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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국경 넘어 캄보디아로

기자명 이우상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트럭에 실려 먼지 길 5시간 …'탐험'의 서곡

앙코르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다. 빠르고 편하게(비행기로 씨엡리업까지), 다소 느리나 낭만적으로 (비행기와 배로-프놈펜에서 다섯 시간 배를 타고 씨엡리업까지), 그리고 탐험정신을 살리자면 방콕에서 계속 육로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앙코르는 방문이나 답사라는 말보다는 탐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미지와 정글의 냄새를 물씬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련되게 단장된 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 아니라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옛 문명의 현장, 지금도 탐험과 발굴의 손길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기억을 캐내는 현장이다.

수 백대 손수레가 '첫 인사'

방콕에서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아란까지는 너그럽게 잡아 다섯 시간 걸린다. 캄보디아에 비해 선진국이랄 수 있는 태국의 도로 사정은 순조롭다. 국경도시(태국쪽:아란, 캄보디아쪽:포이펫)에 도착하면 정신이 화들짝 든다. 국경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 수백 대가 넘는 손수레꾼의 행렬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고 있으면 날렵한 원숭이(그곳에 널려 있는 아이들)들이 가방이든 카메라든 잽싸게 채간다. 앙코르유적을 모방한 대형 조형물에 새겨진 '킹덤 오브 캄보디아'라는 문구가 무색하다. 우마차만한 손수레를 끄는 수레꾼들은 열살 전후의 여위고 남루한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의 짐을 옮겨준다. 관광객들의 가방 무더기는 바가지를 씌울 수 있는 좋은 물건들이다.


머리 깎은 스님들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듯이 캄보디아 아이들의 나이 역시 짐작과는 차이가 난다. 열두 살이라고 밝힌 우리들의 짐을 나른 수레꾼도 야윈 예닐곱 살 한국 어린이 몸집이다. 턱밑까지 치받는 손잡이를 잡고 수레에 가득 찬 짐을 싣고 국경을 넘어 잘도 간다. 그것은 앙증맞음이 아니다. 처절함이다. 국경이지만 짐 검사는 없다. 사람에 대해서만 태국 출국 심사, 캄보디아 입국심사를 거치면 된다. 수레꾼 아이는 약간의 운임을 받고 즐거워 한다. 그 정도 액수면 캄보디아에서는 짭짤한 거금이다. 몇 푼 되지 않지만 황금에 눈이 멀지 않길 기원한다.

수속을 마치고 씨엠리업까지 가는 차를 기다리는 동안 국경 풍경을 본다. 태국과 캄보디아, 경계선 하나를 두고 생활 수준의 차가 엄청남을 실감한다. 죽어 가는 여인도 보았다. 아사중인 여인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 정부도, 관리도, 이웃도, 나 같은 여행객도. 이미 백골이 된 폴포트나 관심을 가질까. 죽은 자에게 책임을 묻는 비겁함 속에 나도 서 있다.

죽어 가는 여인에게서 한참 떨어진 곳에는 발가벗은 아기가 뙤약볕 아래 앉아있다. 폴포트식이 아닌 21세기식으로 혹은 앙코르제국의 긍지로 캄보디아의 미래를 꾸려나갈 생명으로 규정하고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삶의 가치와 질을 몇 십 년 앞당기거나 뒤로 밀리게 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에 달려 있음을 절감한다. 지금 한반도의 북쪽이 그런 것처럼.

탐험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픽업 트럭을 타는 것이 좋다. 너댓 시간 붉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흙먼지 펑펑 날리는 길을 달려 보라. 앙코르를 향해 다가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총구만 치켜든다면 크메르루즈군이라고 해도 무방할 모습들이다. 눈만 빠끔 내놓고 트럭에 실려 가는 모습들을 보면 무슬림의 무리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단단한 경력을 가진 배낭여행족들도 이 코스를 죽음의 여행이라 부른다. 비포장길 너댓시간을 짐짝처럼 실려 가면 엉덩이가 얼얼하다. 그렇게 앙코르에 다가가는 것이 묘미가 더하다. 발견 초기의 탐험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탄생-죽음이 지척간에 공존

앙코르 유적의 발견자는 프랑스의 탐험가 앙리 무오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1861년이었다. 그보다 앞서 1850년 프랑스 신부 샤를 에밀 부유보가 앙코르를 방문하여 이틀간의 짧은 여행담을 1858년 책으로 발간했다. '당당하고 장엄한 곳'이라는 것이 그가 남긴 인상의 요지이다.

앙코르제국의 역사를 한국사에 대비시키면 대략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 초까지이다. 왕권과 문화가 흐지부지했던 초기와 말기를 빼면 한반도의 고려시대 역사와 동일하다. 앙코르제국이 장엄한 앙코르유적을 남겼다면 고려가 남긴 것은 팔만대장경일까. 섬세하고 치열한 장인들의 유물들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앙코르는 밀림 속에 묻히게 된다. 그리고 감당 못할 정글의 수목들이 거대한 문어처럼 혹은 외계에서 내려온 거대한 파충류처럼 앙코르를 휘감고 비틀고 누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폐허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제국의 후예들조차 그곳을 가리켜 '유령이 돌아 다니는 저주가 내린 곳'이라고 두려워했다. 상당 부분 복구, 복원이 이루어진 지금이지만 을씨년스러운 저녁 무렵에 따쁘롬 사원에 혼자 남겨진다면 배겨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




앙코르와트란 단일 사원만을 건축하기 위해 매일 2만5천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37년이 걸렸다. 유적지 내에는 290여개의 사원이 발견되었고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발견된 것을 복원하는데 최신 장비, 인력, 기술을 무제한 투입한다고 해도 100년이란 시간이 모자란다고 한다.

씨엠리업에 왔다. 1시간 내에 웬만한 앙코르 유적을 탐험할 수 있는 곳이다. 숙소를 잡고 편한 잠부터 자야할 것 같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식이 아니라 느리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 대상에게 나의 어설픈 눈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라 바욘 사원에 우뚝우뚝 서있는 수많은 관세음보살의 얼굴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길 기대한다. 크메르의 미소라 불리는 그 얼굴들이 고려의 후손이며, 같은 황색인인 나를 험상궂게 바라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웅장한 미소를 보러 앙코르 톰으로 간다.



'폴포트'는 누구인가?

왜곡된 민족주의로 '킬링 필드' 만행

앙코르 유적-문헌 무참히 파괴하기도


캄보디아의 현대사, 앙코르의 유산을 알기 위해서 폴포트(1928∼1998)는 거쳐야할 과정이다. 1998년 태국 국경의 정글 지역에서 조촐하게 생을 마감한 폴포트. 3년7개월이란 짧은 통치기간 중 형언할 수 없는 만행을 그의 민족에게 저질렀다. 앙코르 유적 곳곳에 박힌 총탄 자국, 그의 충실한 소년병들이 없애버린 앙코르 문헌들, 지금도 무수히 볼 수 있는 중증 장애인들, 모두가 그가 자신의 조국에 남긴 기념물이다.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 유학까지 했다. 유학 중 공부보다는 사회와 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 공산당원이 되어 공산주의 사상에 몰두한다. 1950년 여름방학(한반도에서는 처참한 살육이 자행되고 있던 시기이다)을 맞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유고슬라비아를 위한 자원노력봉사대에 참여하여 봉사활동을 벌였다. 그는 여기서 유고슬라비아의 강력한 지도자 조시프 브로즈(Josip Broz)가 이끄는 전국민을 동원한 국가 복구정책에 매료되게 된다. 킬링필드의 씨앗이 잉태된 것이다.

그는 결국 캄보디아 노동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이 되었다. 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탄력을 받아 1975년 4월 17일 마침내 프놈펜에 입성한다. 그리고 킬링필드라 불리는 대대적 살육이 시작된다. 그의 가슴속에 뜨겁게 흐르는 피는, 앙코르제국을 일군 민족인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곡된 민족주의는 동족에게, 장엄한 역사의 유물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앙코르 유적의 곳곳에 크메르루즈 소년병의 총탄자국과 부상자들이 증인으로 남아 있다.



글·사진=이우상〈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asdfs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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