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형식과 내용

기자명 법보신문
가사 옷에 경배하는건 범인의 몫
가사 옷 안의 내용은 스님들의 몫


모든 사물 존재는 마주봄의 양면적 대립 구조에서 이루어지 것 같다. 마치 손바닥과 손등이 있어 손이라는 하나의 기능적 작용을 이루는 것과 같다.

하지만, 손바닥을 뒤짚든 되엎든 이 때 손바닥이라는 말의 표현에 가려진 손등의 기능 또한 매우 중요하다. 뒤집든 되엎든 손바닥 못지않게 손등의 역할도 중요하다. 움켜쥘 때는 손등의 탄력이 힘을 실어 주고, 손바닥에 사물을 올려놓을 때는 손등의 표면 장력이 받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손의 기능을 손바닥의 장력만을 의식하지 손등의 탄력은 의식하지 않는다.

이렇듯 사람살이의 일상도 삶의 형식은 삶의 내용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형식과 내용에 있어 형식이란 내용의 허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내용만을 중시하여 소홀하게 여길 수 있을 때도 많이 있다. “가사만 보아도 경배하라”는 가르침에 선뜻 승복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가사란 스님의 외형적 가림인데 그 가림 안에 있는 스님에게 경배하라 함이야 당연하지만 외형적 형식에 불과한 가사옷에 왜 경배해야 하느냐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내용은 제쳐두고 형식에 치중하라는 것이 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현장학습으로 용인의 포은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게 된 적이 있었다. 묘소에 당도하여 참배하려 하여 안내인을 찾으니, 젊은 아낙이 나와 가로 막으며 참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 근교에 있다 보니 놀이 삼아 드나드는 인파로 해서 묘소 관리를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과정의 대화가 지금도 내 머리를 혼란하게 한다. 그 아낙은 포은 선생의 종손부로 재실이나 묘역 관리에 지쳐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반 유흥객이 아닌 대학원 학생들로 포은 선생의 정절을 폐부로 느끼려는 현장학습이라” 하니, 아낙은 마지못해 허락하면서, “나도 일류대학 출신으로 할 수 없이 묘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격고 난 뒤부터 나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의 중요함을 실감하게 되었고, 스님의 가사옷에도 경배해야 함을 체감하게 되었다. 조선조 사회에서 불교의 멸시나 스님의 탄압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른 것이 이 외형적 가사옷의 힘이라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절이라는 구심적 집합소가 있고 이를 지키는 가사옷의 스님이 있어 여러 백년의 외압에도 꿋꿋이 버틴 것이 아니냐는 극히 평범한 사실을 새삼스러이 깨친 것이다.

유교가 종교이든 아니든 불교의 절에 견줄 수 있는 서원이나 제각이 있지만, 이를 관리함에 있어서는 위의 포은 선생의 종손부처럼 “할 수 없이”라는 어려움을 감내하는 자손의 몫으로 남기에 공공을 떠나 사사로운 개인이나 문중의 담당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여기에는 원초적으로 유교의 향교나 서원에는 불교에서 보는 스님이나 가사옷 같은 사제자의 공인이나 법복의 공복이 없었다는 것이 앞으로 유교의 유형문화재의 보호에 어려움이 있게 되었다. 유교가 종교적 윤리보다는 생활윤리로 습합되면서 현대 생활의 여러 변화에서 내용의 변화뿐만 아니라 외형적 형식을 찾기 어려워 진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비해 불교는 집합의 구심처인 사원이 있고, 그 사원의 주재자인 스님이 있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중생교화의 모범이 된다. 내용 못지않게 형식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게 된다.

가사옷에 경배하는 것은 범인의 몫이고 가사옷 안의 내용은 스님의 몫이니, 형식에 내용이 걸맞는지 여부는 스님의 부담이지 경배하는 우리가 조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