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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같은 스님…딸 같은 실무자”[br]믿음-격려로 불교상담 10년 개척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상담개발원
원장 정덕 스님-황선정 사무국장

<사진설명>4월 13일 열리는 ‘마음산책 음악회’를 앞두고 행사를 논의하는 정덕 스님과 황선정 사무국장.

때론 진부한 만남이 극적인 인연사보다 더 극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직장 상사와 직원이라는 만남은 너무 무미건조해서 그 속에서 과연 사람 내음 풍기는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선입견이었나 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선 하나의 향 쌈지를 함께 품고 있는 듯 비슷한 향이 풍겨났다.

불교상담개발원 원장 정덕 스님은 1994년 7월 자비의 전화 간사로 채용돼 처음만난 황선정 씨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어찌나 마르고 여린지, 그야말로 한들한들 하더군요. ‘아이구, 저리 여려서 어쩌나’ 싶으면서도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지요. 왠지 어디서 본 듯한 것이 아마도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봅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불교 상담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배우고 싶었던 황선정 씨는 우연히 불교계에 상담교육과정이 있다는 말을 듣고 1993년 가을 자비의 전화를 찾았다. 교육과정 중에는 심신단련을 위한 산행이 포함돼 있었다. 가을 단풍이 한창 오를 대로 오른 불암산 산행 길, 황선정 씨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불암산 등산로가 꽤 험한 편이어서 젊은 사람들도 버거워 발걸음이 늦어지는데 환갑이 넘으셨을법한 스님이 막 앞서가시는 거예요. 저만치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시더니 우릴 향해 환히 웃으시며 ‘어서들 올라와’하며 아이처럼 손짓을 하시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어찌나 해맑아 보이던지. 그렇게 맑은 스님은 처음 봤어요.”

후원회장-간사로 첫 만남

대학시절 대학생불교연합회 회원 등 일찌감치 불교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스님은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스님은 친구 같이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정덕 스님의 모습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친숙함이었다. 맑고 천진하지만 그 속엔 알 수 없는 경건함이 들어있었다.

황선정 씨는 현재 불교상담개발원 사무국장이다. 원장 정덕 스님과 사무국장 황선정 씨가 각각 기억하고 있는 서로의 첫 모습은 다르지만 그렇게 맺어온 세월은 벌써 십 여 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여리기만 하던 신임 간사’는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사무국장이 됐다. 정덕 스님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소원하던 ‘자비의 전화’ 법인화를 비로소 지난해 이룩했다.

“1990년 자비의 전화가 처음 창립될 당시 비구니회 사회부장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비구니회가 조계사 안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는데 그 위층이 자비의 전화였어요. 전화기 두 대 뿐 변변한 집기도 없이 자원봉사자들에 의지해 운영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후원을 시작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자비의 전화를 기반으로 2000년 4월 불교상담개발원이 조계종 산하 공식 단체로 출범했고 지난해에는 자비의 전화를 불교상담개발원 산하 사단법인으로 우뚝 세웠지만 여전히 정덕 스님의 재정 지원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사무실을 여덟 번이나 옮겨야 했고 임금도 넉넉히 챙겨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던 스님은 밑반찬을 해 나르며 직원들의 식사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변변치 못한 스님 만난 덕에 직원들이 너무 고생 많이 했다”며 안쓰러워하는 스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 때문에 황 국장이 애쓰며 지금까지 자비의 전화를 이끌어 왔다”고 공을 돌린다.

믿고 맡기니 겁 없이 일해

그런데 황 국장의 말은 조금 다르다.

“직원들 밥이라도 챙겨 먹으라며 밑반찬 해다 주시고 절에 들어온 과일이며 사무실에 필요한 갖가지 물건 등도 스님이 수시로 챙겨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이리해라 저리해라 지시하시는 것은 통 없으시니 그야말로 제 멋대로 일을 추진했죠. 지금 생각하며 참 겁 없이 일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스님이 믿고 맡겨 주시니까 소신껏 추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반잔 남은 물 컵’을 들여다보며 ‘절반 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사람과 ‘절반이나 남았다’고 하는 사람을 보는 격이다. 결국 같은 상황을 말하는 두 사람의 표현이 이리 다른 것, 그 깊은 속에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님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일은 해본 사람이 잘하고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가 가장 잘하기 마련입니다. 일을 맡겼으면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면 실망시키는 경우가 없습니다.”

‘자비의 전화’ 법인화 결실

<사진설명>불교상담개발원 원장 정덕 스님은 모든 업무의 기획과 추진을 실무자들에게 맡겨 놓는다. 황선정 사무국장은 “스님의 이런 믿음이 맡은 일을 추진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이런 신뢰는 지난해 불교상담개발원이 개최한 후원행사 ‘마음산책 음악회’에서 잘 드러났다. 처음 해보는 큰 행사에 겁도 났지만 황 국장은 꼼꼼한 기획으로 빈틈없는 행사를 준비했고 정덕 스님은 직접 스님과 불자들을 만나며 행사를 홍보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음악회를 통해 모금된 5000여만 원의 후원 성금은 사단법인 자비의 전화를 탄생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일하다 보면 왜 실수가 없겠어요. 때론 스님에게 말씀드리기도 죄송할 정도지만 스님은 늘 ‘그게 다 공부야’ 하시며 더 격려해주세요. 그런 스님을 보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을 많이 배웠어요.”

황 국장은 올해 두 번째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다. 불교상담개발원 창립 당시부터 추진해온 불교상담대학원대학 설립이 아직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통에 황 국장의 신경이 온통 이쪽으로 실려 있다. 올해 음악회는 대학원대학 설립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다시 한번 불자들의 뜻과 힘을 모으자는 계획이다.

“일을 하면서 사무적인 절차보다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점점 더 절감하고 있어요. 교육부의 인가 조건이 까다로워져 실무적인 준비에도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이 일의 의미를 알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더군요. 스님이 늘 강조하시는 사람들간의 화합과 이해, 그것이 바로 모든 일의 성패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기 시작했어요.”

“불교상담개발원에는 직원들 외에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계십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을 대하다 보면 힘든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누구에게나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하는 황 국장을 보면 참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황 국장에게 점수를 주라면 난 90점을 주겠어요. 나머지 10점은 사람이니까 부족한 것입니다. 그걸 탓하면 안 되지요.”

불교상담대학원 설립 발원

사회생활, 특히 직장생활이란 누구에게나 힘들고 버거운 일이다. 더욱이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일하는 교계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는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인 조건이 되기도 한다. 재정난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끊어질 뻔 했던 자비의 전화가 1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며 든든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격려와 믿음이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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