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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정중무상 선사

기자명 법보신문

긴 침묵으로 언어 이전의 一句를 들으라

결혼 대신 출가 하려
얼굴 상처낸 동생 보고
평생 수행자의 길 걸어

풀옷에 단식 두타행
맹수에 몸 공양하기도
티베트에 선불교 전해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 스님은 지난 20세기 최대의 발굴로 손꼽히는 돈황문서를 통해 1200년의 긴 잠을 깨면서 비로소 우리에게 그 존재가 알려졌다. 초기 중국 선불교의 핵심인물로 부각됐던 그는 놀랍게도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이었다. 속성이 김 씨였기에 중국에서는 ‘김화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입적 후 ‘무상공존자(無相空尊者)’로 추대되기도 했다. 인도를 제외한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500나한상의 한 분으로 조성해 모시고 있을 정도다.

무상선사는 인성염불(引聲念佛)을 통해 무념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법이 널리 알려졌으며, 사천성 일대를 중심으로 중국 선종사의 대표적 계파인 정중종(淨衆宗)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무상선사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그 분이 티베트에 최초로 선불교를 전한 인물이라는 점과 선의 황금시대를 활짝 열었던 마조선사가 남악회향의 제자가 아니라 무상선사 문하에서 수업한 제자라는 점이다. 이는 신라 구산선문의 개창자들 대부분이 마조의 법을 이었으므로 곧 무상선사의 적손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국과 한국의 초기선종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황사와 벚꽃이 휘날리는 봄날, 중국 선불교의 별로 일컬어지는 정중무상 스님을 만났다.

▷‘왕자’로 살아도 괜찮을 듯싶은데 굳이 출가하신 이유가 있나요?
“내 막내 누이동생의 영향이 컸다. 동생은 결혼보다 수행자에 뜻을 두었다. 그런데 혼담이 오가고 대왕께서 억지로 결혼을 시키려 하자 동생은 칼로 자신의 얼굴을 그어 상처를 내고 장차 불도를 닦겠다며 시집가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나는 그런 누이동생을 보며 내 어찌 어린 동생보다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에 평생 출가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당시 화엄이나 유식사상 계통의 불교를 공부했던 게 일반적이었을텐데 어떻게 선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교학을 먼저 익혔다. 그러나 뼛속 깊숙이 올라오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었다. 일천의 성인도 전하지 못했던 언어 이전의 한 구절, 그것을 알고 싶었다.”

▷스님께서는 5조 홍인대사의 법을 이은 처적 선사의 제자라고 들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 문하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스님께서 아무리 일국의 왕자라고 해도 말입니다.
“출가한 이상 더 이상 왕자가 아니다. 나는 당나라로 건너온 뒤 훌륭한 스승을 찾아 각지를 떠돌다가 처적 선사라는 분의 명성을 듣게 됐다. 나는 그 분이 사천성 덕순사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뵀다. 그리고 스승으로부터 ‘무상’이라는 법명을 받고 비로소 수행자로 다시 태어났다.”

▷처음 처적 선사께서 만나주지 않아 스님께서 손가락을 태워 공양했다고 하던데요?
“2조 혜가 스님은 법을 위해 팔까지 자르셨다. 시방의 모든 시비와 번뇌를 밑바닥까지 철저히 없앨 수 있다면 손가락 하나가 문제이겠는가.”

▷그런데 왜 스님께서는 스승인 지선과 처적 선사의 선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습니까?
“남양혜충 국사라는 분이 조어장부의 뜻을 묻는 황제 숙종께 비로자나불의 머리를 밟고 지나가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부처의 머리를 밟고 걸어간다는 것은 부처마저도 뛰어넘어야 참다운 대장부라는 뜻이다. 수행자가 부처나 조사, 스승에 매달리다 보면 천년이 지나도 이를 뛰어넘지 못한다.”

▷스님께서는 스승으로부터 법과 가사를 전해 받은 후 천곡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거기에서 풀잎으로 몸을 감싸고 거의 굶다시피 하며 정진했고, 심지어 스님을 산짐승으로 잘못 본 사냥꾼이 활을 겨누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혹독한 두타행을 하셨나요?
“도에 이르는 데는 지름길이 없다. 그 자리는 외롭고 힘들며 보고 들을 수도 없으며 말이나 생각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두타행은 소욕(小欲)과 지족(知足)을 뼈 속까지 스며들게 함으로서 동체대비의 대보살행을 발현토록 하는 시발점이다. 아무리 몸이 오온이 모인 공(空)한 것이더라도 몸을 통해 번뇌와 업장을 녹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몸을 다스리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기란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나는 바위 절벽에서 수도하고 식량이 떨어지면 흙으로 대신했다. 또 한 번은 두 마리의 맹수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에 나는 내 몸을 깨끗이 씻고 누워 그들에게 내 몸을 공양하고자 했다. 나의 전 존재를 버린 그곳, 밑바닥에 진리는 있었다.”

▷흔히 스님의 선사상의 핵심을 무억(無憶), 무념(無念), 막망(莫忘)이라는 삼구로 보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요?
“무억은 일체 지나간 일을 생각지 말라는 것이요, 무념은 현재의 일체분별과 잡념을 하지 말라는 것이요, 막망은 미래에 대한 망상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 삼구는 곧 계율·선정·지혜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백 가지 계율을 지키고, 여러 가지 관법을 동원해 선정을 닦고, 지혜를 연마하는 복잡하고 오랜 과정을 무억·무념·막망으로 대치한 것이다.”

▷그럼 금강경과도 어느 정도 통할 것 같은데요?
“금강경에서 말하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금강경의 메시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마음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분별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말인데, 분별과 집착을 벗어난 상태가 바로 무억, 무념, 막망의 상태다.”

▷티베트 고대 역사서인 『바세』에 따르면 스님께서 티베트에 불교를 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나오는데 사실인가?
“시절인연일 뿐이다. 티베트사절단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를 이끌고 가는 나를 보았다. 그 후 성도에 머무르는 두 달 동안 불교에 지관(止觀)수행에 대해 물어왔다. 그들은 티베트는 국왕이 서거하고 대신들이 불법홍포를 막고 있어 쉽게 법을 전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들 사신에게 불교를 가르쳐주었고, 훗날 어린 왕자가 신심을 일으켜 불법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세 권의 경전을 전해 주었다.”

▷스님의 명성이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지고 마조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선객들이 스님의 법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남종의 투장(鬪將)이라는 하택신회 스님이 자신의 스승인 혜능 스님이 달마대사의 정법을 이은 조사라고 주장하기 위해 선종사를 왜곡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중국인이 아니라 신라인이었기에 저지른 고의적인 획책의 결과로 보이는데 억울하지는 않습니까?
“물을 떠난 파도가 있을 수 없고 파도를 떠난 물이 있을 수 없듯 누구의 탓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 역사적인 해석이 그러하듯 법맥 또한 시대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고 하택신회 스님은 자신의 시대와 그 역할에 충실했을 따름이다. 손가락이 길고 짧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듯 만물은 하나이며 참다운 법도 둘이 아니다. 나로 인해 후대에 한 사람이라도 참다운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면 그만이지 무얼 더 바라겠는가.”

▷몇 해 전에는 스님께서 법을 펴고 입적하셨던 중국 대사자와 한국이 공동으로 스님의 행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렸습니다. 또 요즘에도 스님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계속 나올 정도로 스님에 대한 재조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혹시 요즘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손바닥을 펴면 천지가 내 것이지만 주먹을 쥐면 그 속에는 동전 하나 감추기 어렵다. 마음을 열어 백화가 피어나고 천지를 담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선이다. 삶이란 참으로 무상하고 무상하다. 이제 감각을 넘어선 긴 침묵을 통해 언어 이전의 일구를 들으라.”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참고자료
『속고승전』, 『신승전』, 불교영상회보사 『정중무상선사』, 민영규 『사천강단』, 조용헌 「정중무상의 능엄선 연구」 등


무상선사 어록

“마음이 평등하면 일체법이 평등한 것이다. 참된 성품(眞性)을 깨닫는다면 불법 아닌 것이 없다. 이치를 깨달았을 때에 비로소 탐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참된 수행의 경계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때엔 구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본래 평등하고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무념 자체가 계, 정, 혜를 완전히 갖추고 있다. 삼세제불이 모두 이 문을 통해 대각에 드셨으니 이 문 말고는 달리 다른 문은 없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명경알과 같아서 모든 상들을 비출 수가 있는데,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은 거울을 뒤집은 것과 같아서 아무 것도 비출 수가 없는 것이다.”

“중생이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설적(假說的)인 무념이란 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생각이 없어진다면 무념 그 자체도 존재할 수 없다. 무념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계율이란 훈련(訓練), 기율(紀律)을 의미한다. 계율은 푸른색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니고 붉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니다. 마음도 아니고 물질도 아닌 것이 계의 본체이다. 계는 중생의 본성이다. 중생은 본래 원만하고 완전하고 순수하였다. 헛된 생각이 일어나면 중생은 각을 버리고 부정과 어울리게 되는데 이것은 계를 어기는 것이 된다. 헛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중생은 부정을 버리고 각과 어울리게 되는데 이것은 계를 지키는 것이 된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절대계율이며 궁극적 계율이며 그것은 모든 정신적 자각을 없애는 것이 된다.”

후대의 평가

“이제 처참한 많은 시련을 겪어온 인류문화의 필연적인 추세로 일여평등한 진여법성의 기치 아래 모든 종교철학과 문화현상이 화회발전(和會發展)하는 불일재휘(佛日再輝)의 날에 우리 김화상의 큰 별은 한결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전 조계종 원로위원 청화 스님)

“무상 대사는 중국선불교에 크나큰 공헌을 했을뿐더러 티베트까지 선법을 널리 휘날린 우리나라 출신인 신라의 고승으로 중국선종사에 빛나는 거인일뿐더러 정중종을 일으켜 세운 분이다.”
(전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서돈각)

“무상이 얼마나 이름을 떨쳤는가는 한국 스님으로는 유일하게 (중국의) 오백나한 가운데 455번째로 끼였다는 것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과거사는 조상에 너무 무심한 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전 조선일보 논설고문 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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