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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동국대와 연극영화

기자명 법보신문

70년 학생연극 전통…한국연극영화 산실 우뚝

한국연극영화 주도
동국대, 간판스타들


<사진설명>최근 동국대 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쾌척한 고현정 불자.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연극이 대중화를 이루는 등 오늘날 한국 연극영화가 폭발적인 흥행을 이룬 것은 동국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0년대 이전까지 사회적으로 천시풍조가 만연하던 연극을 학문으로 승화시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연극학과를 개설하고 이를 통해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냄으로써 한국 연극영화 발전의 토대를 닦았기 때문이다.

한국연극영화 발전 토대 닦아

동국대가 연극영화 분야를 본격적으로 개척한 것은 1960년 연극학과 창립이후부터지만 실제 동국대 연극의 전통은 1930년대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조직한 연극부 활동에서 비롯됐다. 중앙불교전문학교 시절 불교의 대중화와 민족의 계몽을 위해 조직한 동국대 연극부는 불교를 소재로 한 희곡을 쓰고 직접 공연함으로써 학생연극의 서막을 열었다. 1931년 ‘지옥화’를 시작으로 1932년 ‘업보’, 1933년 ‘2층의 사나이’, 1934년 ‘돈’ 등 매년 뛰어난 작품들을 속속 무대에 올린 동국대 연극부는 이후 1939년 부처님오신날 경축행사의 하나로 진행된 ‘흰 젖’이라는 연극 공연을 통해 그 실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당시 총무원과 조선일보사 후원으로 태고사에서 열린 이 연극은 주연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학생들에 의해 진행된 대규모 연극이라는 점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이뤘다.

특히 ‘신연예관 및 통속적인 주제’로 일삼던 종래의 일반적인 학생연극과는 달리 ‘흰 젖’은 순수한 불교극이라는 점에서 각계의 관심이 컸으며 수많은 관객이 관람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이처럼 동국대가 학생연극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중앙불전에서 혜전으로, 동국대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왕성했던 동국대의 문학적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최금동, 이치우 등은 조선일보 등 각종 신춘문예에서 시나리오 부분으로 당선되는 등 이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펼쳤고, 이런 문학적 전통은 곧 학생극예술연구회를 창립시키는 밑바탕이 됐다.

1947년 국문과 김기림 교수의 지도로 장진건, 한재수, 이강현, 이혜경 등이 중심이 돼 결성된 극예술연구회는 창립 제 1회 작품으로 베나벤트작 ‘가장의 인생’을 공연하고 이어 ‘벗꽃동산’을 무대에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덕화, 최민식, 채시라 등 다수 배출

그러나 1950년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동국대 학생연극활동도 잠시 주춤해야만 했다. 하지만 1953년 휴전과 동시에 당시 국문과 학생이었던 장한기, 박영민 등이 주축이 돼 다시 결성된 극예술연구회는 각종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해 수상함으로써 옛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나갔다. 이처럼 동국대가 문학 뿐 아니라 연극활동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자 자연 연극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이 속속 입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현재 한국 드라마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김재형 (대표작 용의 눈물) PD는 오학영, 이철향과 더불어 재학시절 ‘신무대실험극회’를 결성, 문예활동과 연극활동을 병행하면서 한국연극계의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뿐만 아니라 김재형 씨는 청소년들의 연극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1960년 제 1회 전국남여 중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를 한국 연극사상 최초로 개최함으로써 동국대 연극학과 창설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30년 이상 학생연극의 전통을 이뤄온 동국대는 1960년 동대극예술연구회를 주도했던 장한기 교수와 당시 연극계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유치진 선생의 노력으로 마침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연극학과를 창설할 수 있었다.

연기자 필수코스 ‘동대연영과’

동국대 연극학과의 개설은 곧 한국 연극 발전의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특히 1960년 대학본관 아래층에 마련된 동양최초의 소극장은 마땅한 발표의 장이 없던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했다. 극단 실험극장, 칠일회 등 많은 단체가 이 소극장에서 창립, 성장해 나갔을 뿐 아니라 1963년에는 동국대 선후배 모임인 동국극회가 창단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1962년 연극영화학과로 개명된 이후 동국대 출신 연기인들은 교내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이미 졸업이전부터 한국 극계, 방송계, 영화계로 속속 진출했고, 세인들의 관심은 동국대로 집중됐다. 뿐만 아니라 고(故) 김무생 씨를 필두로 이덕화, 강석우, 최민식, 박신양, 김혜수, 고현정, 전지현, 채시라, 이성재 등 한국 방송계, 영화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연예인들을 배출하면서 연기지망생들의 필수코스는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특히 1993년 부족한 기자재 확충을 위해 이덕화, 김혜수, 이미현, 고현정, 홍학표 등이 광고출연료를 보시하는 등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이어가면서 연극영화학과는 동국대의 얼굴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척박한 한국연극영화계를 일구기 위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학과를 설립, 이 분야를 개척해 온 동국대는 21세기 새로운 한국연극영화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지금도 어두운 소극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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