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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스님 생각 꼼꼼한 학자 고집[br]“달라서 더 잘 통해”

기자명 법보신문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종림 스님-허인섭 교수

<사진설명>종림 스님과 허인섭 교수는 함께 만들어 가려는 사이버 불국토가 어떤 세상인지 서로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승속을 넘어선 도반이다.

두 사람 걷는 품새가 영락없이 닮았다. 느긋이 뒷짐을 지고 활짝 핀 꽃망울을 감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어찌나 똑같은지 바라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아니나 다를까, 별스런 얘기도 아닌데 서로 한마디씩 던지며 주고받는 대화마다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연신 큰 웃음을 터트린다.

“스님, 우리 같이 일한지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그럭저럭 벌써 십년 됐네요. 허참, 내가 스님한테 포섭 당하게 분명해요.”

“그러게 말이야. 어쩌다가 사람들이 자네하고 나를 ‘한 세트’로 생각하나 모르겠어. 자네가 영어를 좀 해서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일을 떠맡기긴 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가. 허허.”


대장경 전산화 작업에 있어 독보적인 성과를 구축하고 있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종림 스님과 하와이 대학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한 덕성여대 철학과 허인섭 교수. 지금은 서로 다른 영역에 적을 두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고려대장경 전산화가 화제로 떠오를 때면 이 두 사람의 이름은 여지없이 함께 거론된다.

이력만 살펴보자면 허 씨가 고려대장경 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세월은 그리 길지 않다. 1999년 7월 고려대장경 연구소 학술부장을 맡은 것이 공식적인 첫 직함이었고 2003년 덕성여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후 현재는 고려대장경연구소 학술부 특별연구위원으로 위촉돼 있는 정도가 전부다.

‘미남 스님’ Vs ‘될성부른 떡잎’

잠깐 허 씨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미국 하와이대에서 깔루파나 교수의 지도로 불교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허 씨가 종림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여름 즈음이다. 임시 귀국해 서울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던 허 씨는 평소 친분이 있던 혜묵 스님(전 비백교학연구소장) 손에 이끌려 마포구 합정동의 한 사무실을 찾아갔다. ‘고려대장경연구소’라고 간판이 붙은 이 사무실에는 몇 안 되는 직원들과 한 분의 스님이 있었다.

“종림 스님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 ‘미남’ 이었습니다. 그것도 요새말로 ‘살인 미소’까지 갖추고 있는. 하지만 ‘고려대장경을 연구한다’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사무실의 모양새는 옹색하더군요. 대장경을 전산화하겠다는 생각은 참 기발하고 중요하긴 한데 ‘실현되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지요. 그러면서도 도와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사무실이 너무 옹색해서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학생 신분이었던 허 씨가 당장에 스님을 도울만한 것은 별로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인사나 하고 안면이나 익히는 자리려니 했는데 스님이 대뜸 모조 경판 두 장을 선물로 내밀었다.

“하나는 제 몫이고 또 하나는 제 지도교수께 갖다 드리라며 두 장을 주시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경판이 미끼였던 것 같아요. 그것도 모르고 그걸 덥석 물은 탓에 오늘까지 꼼짝 없이 스님한테 붙잡혔나? 하하하.”

스스럼없이 농을 하는 허인섭 교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스님이 역공을 편다.
“그 때만해도 자넨별로 인재는 아니었지. 당시야 한문 잘하고 컴퓨터 잘 다루고 타이핑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지, 학문적인 연구 단계는 아직 엄두도 못 낼 때였으니까. 근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고 보면 쓸 만하겠다 싶더라구. 그래서 그냥 하나 안겨 보낸 거야. 그걸 몰랐구먼.”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렇게 첫 대면을 한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96년 허 씨가 하와이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다. 한 지붕 아래 둥지를 틀고 그야말로 ‘아옹다옹’ 한 살림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한 두 해가 더 지나 1999년 허 씨가 고려대장경 연구소 학술부장으로 상근하면서부터다.

기획 단계 논의땐 출·재가 없어

“종림 스님을 얼핏 보면 일에 대한 집념이나 부담감이 전혀 없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대장경 전산화 사업의 전체적인 그림은 스님이 그리시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해 나갈까에 대해서는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특히 연구소 운영 경비며 사업비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 스님은 거의 무계획이 계획이라 할 만큼 대책이 없으신 분이에요. 도대체 이 연구소가 어떻게 운영돼 가고 있는지가 신기할 정도였으니까요.”

종림 스님과 허인섭 교수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학자적인 성향이 강한 허 교수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일처리를 좋아한다. 좀 늦더라고 꼼꼼하고 순서에 맞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허 교수의 생각이다. 종림 스님은 어떤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은 종림 스님은 그런 만큼 틀에 얽매이는 것은 딱 질색이다.

“종림 스님은 어떤 목표를 위해 상대를 몰아붙이는 경우가 없는 분입니다. 자신이 생각한 방향이나 방법으로 일을 진행시키기 위해 담당자에게 지시하거나 조정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 스님은 일을 맡긴 이상 그 일을 맡은 사람을 철저히 신뢰하는 성격입니다. ”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 연구소 내에서는 목적과 방법 등을 놓고 치열하게 논의를 거친다. 그럴 때는 스님이냐 재가자냐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일에 대한 각자의 의견과 생각을 자유롭게 펴고 서로의 생각을 철저하게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책임자에게 모든 결정권을 맡기는 것이 스님의 ‘스타일’이다.

“고려대장경연구소의 책임을 맡고있긴 하지만 연구소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보수를 많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이 일이 각자의 공부와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신합니다. 허 교수도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그래서 그냥 믿고 맡긴것 뿐이죠.”

종림 스님은 허 교수의 실력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인다. 특히 고려대장경연구소가 국제 학술회의 등에 자주 참석해 전산화에 관한 외국의 정보나 관련 연구자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었던 데에는 허 교수의 역할이 컸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말이야, 허 교수는 그리 융통성 있는 사람은 아니야. 내가 보기엔 이렇게 하면 일이 더 빨리 잘 될 것 같은데 도통 말이 통해야 말이지. 고집도 쌔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는 자기 생각대로 일을 밀고 나가요.”

‘사이버 불국토’ 함께 가는 도반

<사진설명>1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해 온 두 사람. 이제는 걷는 모습도 닮았다.

이러다 두 사람 싸움이라도 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지만 말끝마다 연신 터지는 웃음을 보면 흉을 보자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그런 성격의 차이 정도는 이미 두 사람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이버 세계’에 대한 두 사람의 목표가 하나로 모아져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의 속성은 불교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허 교수에게 “그 곳은 아직 주인이 없는 공터나 마찬가지이니 불교가 그곳에 깃발을 꼽는다면 곧 불국토가 아니겠느냐”며 종림 스님은 맞장구를 친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이 두 사람은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온 것이다.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을 일러 ‘친구’라고 하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혀 다른 듯한 이 두 사람은 꼭 그런 친구처럼 보인다. 세속의 옷을 입은 사람과 출가의 옷을 입은 또 한 사람. 이렇게 확연히 다른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하나의 목표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차이는 그저 한때의 현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지금 새로운 불국토를 만드는 길에 서로의 도반이 되어 한 걸음씩 발걸음을 맞춰 나가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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