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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십찰(華嚴十刹) - 13

기자명 법보신문

의상의 華嚴法燈 신라 전역 확산 은유 표현

華嚴十刹은 대학 수준…최치원 11곳, 삼국유사 12곳으로 기록

<사진설명>정선의 금강산도 화첩 중 낙산사.

의상은 낙산사와 부석사를 창건했고, 또한 천축산 불영사와 금강산 마하연을 창건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의상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절도 적지 않은데, 오진이 살았던 골암사(寺), 진정이 세운 비로사(毘盧寺), 능인이 창건한 봉정사(鳳停寺), 표훈이 창건한 표훈사(表訓寺) 등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의상과 그 계승자들에 의해서 여러 사찰이 창건되면서 화엄종 세력은 차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신라 하대(下代)에는 전국의 여러 곳에 화엄종 사찰이 건립되자 화엄십찰(華嚴十刹)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최치원(崔致遠)은 신라에 화엄대학(華嚴大學)이 십산(十山)에 있다고 하면서, 화엄교학의 폭넓은 유포를 강조했습니다. 즉, 팔공산의 미리사(美理寺), 지리산의 화엄사, 태백산의 부석사, 가야산의 해인사와 보광사(普光寺), 공주의 보원사(普願寺), 계룡산의 갑사, 금정산의 범어사, 비슬산의 옥천사(玉泉寺), 모악산(母岳山)의 국신사(國神寺), 부아산(負兒山)의 청담사(靑潭寺) 등의 십여 곳이 화엄대학이 있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의상은 십찰(十刹)에서 전교(傳敎)하게 했는데,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남악(南岳)의 화엄사 등이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최치원은 화엄대학이 있던 열 개의 산을 중심으로 기록했고, 일연은 화엄종 사찰이 있던 열 개의 절을 기준으로 하여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치원의 기록에는 가야산에는 두 개의 사찰이 있어서 모두 십산(十山)에 11개의 절이 나열되고 있음에 비해서, 『삼국유사』에는 산이 아닌 곳에 위치한 비마라사가 기록된 것도 이와 같은 기준의 차이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최치원이 밝힌 11개의 절과 『삼국유사』 중의 비마라사를 합치면, 모두 12개의 사찰이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화엄십찰’ 혹은 ‘해동 화엄대학이 십산에 있다’는 등의 표현이 정확히 열 개의 산이나 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화엄교학의 전국적인 전파나 화엄사찰의 전국적인 분포 등을 화엄적으로 표현한 듯합니다. 화엄교학에서의 십(十)은 흔히 한량없이 많은 것을 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라에는 화엄대학이 십산에 있었다는 지적이나 화엄종 사찰이 열 개였다는 등의 표현은 의상의 교화가 온 나라에 미치고 화엄교학이 두루 전파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화엄종 소속의 사찰을 화엄대학으로 표현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신라의 화엄교학 전교나 연구는 대학이라는 표현에 걸맞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엄십찰이라는 호칭은 신라 하대에 성립되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해인사가 창건된 802년으로부터 최치원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쓰던 904년에 이르는 9세기에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의상법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명실 공히 신라 화엄종의 중심 도량이었고, 8세기 중엽쯤에는 천여 명의 대중이 운집한 대가람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절에서 이루어진 화엄교학에 대한 강의와 연구는 참으로 수준 높은 것이었습니다.

8세기 중엽 연기(緣起)에 의해 창건된 지리산의 화엄사는 『화엄경』 전체를 돌에 새긴 석경(石經)으로 장엄할 정도로 웅장한 절이었습니다. 연기는 원래 황룡사 승려였는데, 지리산에 화엄사를 창건하고 화엄경 사경을 주도하고 그 발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8세기 중반 뛰어난 화엄학승으로 화엄경과 기신론에 밝아서 화엄종풍을 크게 선양한 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계룡산의 갑사가 어느 정도의 절이었던가는 남아오고 있는 거대한 철 당간으로 대개 짐작됩니다. 의상의 4대 제자격인 순응(順應)에 의해 9세기 초에 창건된 해인사는 신라 하대의 중요한 화엄종 사찰이었습니다. 특히 9세기 후반경의 해인사에는 현준과 희랑 등 유명한 고승이 활동했고, 최치원 또한 만년에 이 절에 머물면서 법장화상전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상이 신라 하대에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신라 화엄십찰 중의 부석사, 화엄사, 해인사, 범어사, 갑사 등은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과 사세(寺勢)를 자랑하는 절들인데, 우연한 일만은 아닙니다. 화엄십찰 중 비마라사터는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에 있습니다. 비마라산이 영춘의 서쪽 8 리에 있다는『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비마라사가 영춘의 서쪽 10 리 마라산에 있다는『여지도서』의 기록, 그리고 영춘이 고려 예종 9년(1018)에 원주에 속했다는『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 등을 통해서 지금의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 비마라산의 비마루마을에 있는 절터가 곧 비마라사지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절터는 밭으로 변해 있고, 약간 남은 담장과 간간이 출토되는 기와로 하여 그 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화엄십찰 이외에도 신라시대의 화엄종 사찰로 생각되는 절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의상법사가 창건하거나 주석했던 곳으로는 경주의 황복사(皇福寺), 천축산 불영사(佛影寺), 양주의 낙산사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법사의 제자들이 창건했거나 머물렀던 불국사, 세달사, 월유사, 표훈사, 법수사 등도 화엄종과 관련이 있던 사찰이었습니다. 황복사는 법사가 머리를 깎았던 절일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법계도』를 강의하던 곳이며, 훗날 제자 표훈이 주석하기도 했던 절입니다. 지금 경주시 낭산의 동북쪽 끝에 있는 황복사 절터에는 삼층석탑이 남아오고 있습니다. 불영사와 낙산사는 의상이 창건한 절입니다. 세달사는 8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화엄학승 신림이 그의 제자 질응(質應) 등과 더불어 화엄학을 강의하던 곳입니다. 세달사는 후삼국시대의 한 주역인 궁예가 출가하여 젊은 날을 보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고려전기에 이 절은 흥교사로 개칭했고, 인종의 아들인 승 충희(沖曦)의 비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월유사 또한 신림이 화엄법회를 주관하던 곳입니다. 특히 화엄종장 표훈과 신림으로부터 화엄학을 수업한 김대성이 화엄적인 세계, 즉 화엄불국을 표상화하려는 뜻으로 이룩한 불국사와 석굴암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자랑이 되고 있습니다. 경문왕이 원성왕의 원찰로 건립했던 경주의 숭복사(崇福寺), 장흥의 천관사 등도 화엄종 사찰이었습니다. 중국을 거쳐 천축까지 순례한 뒤에 신라로 귀국했던 8세기 중반의 원표(元表)가 창건했던 가지산 보림사도 처음에는 화엄사찰이었습니다. 신라의 명산에는 이처럼 많은 화엄사찰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물론 이들 사찰 중에는 의상계의 승려들이 세운 절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따라서 화엄십찰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절도 없지 않겠지만, 화엄종 사찰이 전국적으로 건립되면서 신라의 명산은 화엄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산에 처음으로 사찰을 창건하는 것을 흔히 개산(開山)이라고 합니다. 절이 세워지기 전에도 산이야 그 가슴을 열고 있었지만, 특히 절이 세워진 후에야 산이 열렸다고 하는 것은 어두운 산에 진리의 등불을 밝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학교가 없던 시절의 사원은 수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전국의 십산(十山)에 화엄대학이 있어 환한 등불을 밝히고 있던 시절의 신라 사회는 어둡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생의 어리석음은 보살이 밝히는 지혜의 등불로 밝혀집니다. 그리고 세상의 밤은 전등(傳燈)으로 지켜집니다. 스승과 제자가 교법을 전하여 진리가 세상에 빛을 발합니다. 이 풍진 세상 파도에 휘말린 사람들, 어두운 밤 험한 길에 지친 사람들, 이와 같은 나그네들을 위해 장명등을 밝힙니다. 어둡고 험한 길목을 지키며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입니다.

의상이 태백산 부석사에 밝힌 화엄의 법등, 그 등불은 십대 제자들이 전했고, 제자에서 제자로 다시 전해져 신라 전역을 밝혔습니다. 한국불교사상사 위에서 차지하는 화엄사상의 비중은 너무도 크지만 그 연원은 의상법사의 전교활동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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