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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자리(自利)가 바로 이타(利他)

기자명 법보신문

삶은 너와 나의 대립-어울림으로 부터 시작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이타행의 다른 명칭

사람살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이다. 내가 있어 네가 있다. 이 나와 너의 사이가 바로 인간이란 말이고, 그래서 인간이란 말이 세상과 동의어로 쓰여 왔던 것이다. 이 사이라는 표현 자체가 둘의 어울림이 없으면 성립될 수 없는 언어이다. A와 B가 있어 만나려는 찰나가 바로 사이이다.

어머니 뱃속의 열 달 동안은 사이가 없는 동체였지만, 태어나는 순간 바로 나와 너의 상대적 존재로 변하면서 둘의 관계에 사이가 생긴다. 이것이 사람살이의 인간적 어울림의 시작이요, 이 사이의 무한적 확대가 세계가 아닐까.

따라서 사람살이의 시작이 나의 출생의 순간부터이고, 이 순간부터 어미 자식이라는 나와 너의 대립적 어울림이 이루어지고, 이 어울림의 찰나가 사이의 접촉순간이니 이 접촉의 순간에서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적 방어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 방어적 작용이 자리일 것이니 이 자리적 방어가 사이를 넘어서 저쪽으로 침범하면, 이때는 배타(排他)가 될 것이고 이 배타가 지나치면 해타(害他)가 될 것이다. 그러니 배타나 해타가 아닌 이타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어찌 보면 동일공간에서 존재하기도 쉽지 않은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나와 너의 어울림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라는 존재는 너가 있어 형성되니, 결국은 공존(共存)이란 말이 존재의 정확한 표현이 된다. 자리와 이타는 이 공존을 위해 실현되어야 할 덕목인 셈이지만, 어느 한 면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공존이 아닌 충돌을 불러 오기가 십중팔구이다.

따라서 ‘충돌이 없는 공존을 위하여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하는 잠시 동안의 성찰이 필요하다.

졸렬한 생각으로는 올바른 자리를 위하여 이타라는 생각을 우선 접어두는 것이 어떠할까 싶다. 자리란 자신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것이다. 나의 도리만 철저히 수행하면 이타는 자동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다. 자식의 도리만 철저히 하면 너인 아버지는 평안하다. 남편의 도리만 다하면 너인 아내는 행복하다. 이렇듯 철저한 자리는 바로 행복한 이타와 직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임무로 실행되는 행위를 자칫 상대방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남편의 도리를 철저히 하여 부부의 애정이 두터워졌고 거기에서 아내가 아닌 내가 즐거운 것이지, 아내를 위해서 즐거움을 주려고 한 남편의 행위는 결코 아니었다.

이 글을 부처님오신날 아침에 쓰고 있다. 절마다 아기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욕불의식을 진행할 것이다.

아기부처님은 오른 팔을 위로 하고 계신다. 이는 부처님이 탄생하실 때의 일화에 의한 것이라 한다. 부처님은 태어나시어 누구의 부축도 없이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사방을 돌아보면서 오른 손을 들고 말씀하시기를 “하늘 위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 하셨다는 것이다. 이를 기르는 욕불의식이 오늘도 실행되고 있다.

나는 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의미를 잘 이해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만이 존귀하다’는 이 말에 어떻게 이타의 중생제도가 있는지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체 하늘 사람 중에서 가장 존귀하여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다 여의게 하여 일체의 하늘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독존이라는 어감이 주는 오만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핀 것처럼 ‘유아독존’이 철저한 자리임이 분명하기에 이것이 바로 중생적 이타의 딴 명칭이라 생각한다. 우리들 범부로서는 제 분수에 맞는 자리에만 힘쓸 일이지 섣불리 이타를 의식하면 이타 아닌 배타 내지는 해타가 될 위험이 많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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