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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김기추 거사의 『도솔천에서 만납시다』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입니까? 빤한 거 아닙니까? 바로 청정한 본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여러분에게는 청정한 본심이 있고, 이 본심이 바로 부처라는 걸 말하기 위해 온 거예요. 그런데 예전의 조사들은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청정본심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만 ‘내 마음’이라고 하면서 그 낱말만 알아요. 그래서 어떤 조사는 ‘판때기 이에서 털이 나느니라(板齒生毛)’라고 하고, 다른 조사들은 ‘삼서근(麻三斤)’ ‘똥막대기(乾屎)’라고 했어요. 이거 알고 보면 참 잘한 말이에요. 너무나 기막힌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했나요? 본래의 마음자리라고 하면 이 마음을 알아먹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냥 말마디(言句)만 가지고 ‘내 마음’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 마음이 자기 마음입니까? 그런 마음은 자기 업식(業識)의 굴림새입니다. 진여본성에서 한 가닥 여김(念)을 일으켜 그 여김의 경계와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데서 무명이 일어나는데, 그 무명이 알음알이(識)를 낳는 이것을 업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내 마음이다, 네 마음이다 하는 것은 이 알음알이가 몇 차례나 굴리어진 현상인데, 세상 사람들은 이걸 전부 마음이라고 해요. 동서의 석학이나 성현들도 전부 이걸 마음으로 알았어요. 이 때문에 ‘달마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깨끗한 마음자리를 가리키러 왔다고 하면 그만인데도, 오히려 마음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을 그르칠 것 같기에 할 수 없이 ‘판때기 이에서 털이 나느니라’ ‘삼서근’ ‘똥막대기’ ‘호떡’이라고 말한 겁니다. 이건 ‘왜 이런 말을 했을까?’하고 의심을 유도하는 방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진여본성-여김(念)-무명-알음알이(識)로 굴리어지는 것을 마음이라 하고 있어요. 물론 이 업식이 몇 번씩 굴려져서 업식놀음을 한다 할지라도 마음이 아닌 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지 진짜 마음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옛 조사들은 마음이라고 하면 듣는 이의 평생을 그르칠까봐 마음이란 얘길 안한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화두가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처의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옛 승려들이 가진 화두와 우리가 갖는 화두가 시간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화두가 있어야 합니다. 설사 화두가 소용이 없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판때기 이에서 털이 나느니라’나 ‘똥막대기’라고 말한 것은 알아야 되지 않아요? 이것도 모르면서 화두가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화두를 의심해 들어가다 나중에 어떤 계기-이 계기는 여러분의 마음 가짐새예요-가 닥치면, 경계에 닿찔린(抵觸) 마음을 넘어서서 마음자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몸 밖에서는 천년, 만년을 찾은들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몸 안에서 찾으면 이거만치 쉬운 것이 없습니다.


백봉 거사는

백봉 김기추(1908~1985) 거사는 독립운동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해 무(無)자 화두로 정진하던 중 1964년 1월 활연대오한 도인이다.

큰 깨달음을 이룬 뒤 속가에 머물며 거사불교를 크게 일으켰으며, 청담, 전강, 구산, 경봉, 탄허, 혜두, 강혜 스님 등과 교분도 두터웠다. 1985년 8월 2일 아침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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