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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오월은 가정의 달

기자명 법보신문

가정은 인간질서의 종합적 훈련장
부모답고 자식다운게 세간의 불법

진달래 철쭉꽃이 한창이더니 송화 가루 날려 산길이 노랗게 물들었다. 곧 아카시아 꽃이 피어 향기를 날리면 더위를 식히려고 녹음을 찾게 된다. 신록이라는 말이 어제였는데 이제는 녹음으로 변해 버리더니 어느새 5월의 마지막에 서 있다. 이런 계절의 푸르름에 우리의 마음도 저절로 설렌다. 이렇게 흥분되는 마음을 밖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기본 공간인 가정으로 안아 들여 푸른 희망을 간직해 보라는 것이 어쩌면 5월을 가정의 달이라 한 이유가 아닐까.

가정, 이것이 바로 사람살이의 출발점이다. 가정은 인간질서 기본 윤리의 최초 단위이자 무한대로 확산될 가능성을 포용한 극소 극대의 핵심적 공간이다. 부부의 대칭으로 시작된 가정에서 자식이 태어남으로써 부자의 관계가 형성되고, 자식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횡적인 질서인 어린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 이 친구 사이가 자라면서 시간적 차이로 장유의 질서가 형성된다. 이렇게 어울려 확산되며 가정이라는 집단이 이루어지다보니, 자연히 집단의 통제가 요구되고, 이 통제에는 통치자로서의 가장과 추종자로서의 가족이 있어, 국가 국민의 최소핵이 이루어지고 여기에서 소위 군신유의적 질서의 싹이 트게 된다.

가정은 바로 인간질서의 종합적 훈련장이다. 가정이라는 집단을 벗어나서 윤리적 질서를 찾을 곳이 없다. 인간질서의 기본 갈래를 오륜이라 할 때, 이 오륜의 기본적 조합이 바로 가정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회 교육의 기본 틀이 가정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가정을 외면한 채, 인위적 제도 교육에만 의존하는 것은 이래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설정해 놓은 가정의 달이라는 거창한 외침에 넋을 잃을 것이 아니라, 설레는 신록의 푸르름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 나를 다잡아 보는 자숙이 필요하다.

사람살이의 질서인 윤리를 말하게 되면 흔히 유교적 이념의 산물로 오해하면서 종교인에게는 이단적 시각으로까지 비쳐지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반면 유가에서는 승려나 신부의 홀몸의 청결을 윤리적 모순으로 곡해하여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사회윤리는 보통 윤리이고, 세상을 벗어나는 출세간의 윤리는 특수 윤리이기에 처지가 다를 뿐이다.

스님들이 “위로는 보리의 바른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구도정신에서 위로의 깨달음을 구하기 위한 선택인 출세간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적 특수 윤리인 것이다. 깨달음이 있은 뒤의 중생 교화는 중생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져야 할 보통 윤리의 실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육조대사의 말씀이 다시 더 실감 있게 새겨진다. “부처의 법은 세상 사이에 있는 것이지, 세상 사이를 여의고서는 깨닫지 못해,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으면, 마치 토끼에게서 뿔 찾는 것 같아.(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 猶如求兎角)” 부처님의 가르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살이가 바로 가르침이요, 배움이요, 깨달음이다. 이를 떠나서 깨달으려 한다면 세상에 없는 것을 찾는 어리석음이니, 뿔 없는 토끼에게 뿔을 내 놓으라는 것과 같다. ‘간을 말리느라 바위 위에 두고 왔다’는 토끼의 말에 속는 거북이와 다를 것이 없다.

가정의 달에 다시 생각나는 것이 ‘~답게(如)’이다.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남편은 남편답게가 바로 여법(如法)한 세간의 부처법이다. 일상생활의 물 긷고 땔감 베는 것이 바로 진리요, 부처님의 법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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