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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스님]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이 만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 상
그 마음도 정해진 것 없음을 깨달아야


절 안 대중 스님 방에 어느 노스님께서 붓글씨로 쓰신 ‘’一切唯心造’ 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오고 가며 몇 번을 보았는데 지난주에 우연히 그 방에서 차를 마시다 그 글귀가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 “일체의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지어졌다.” 이 글의 의미를 마음에 두고 조용히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솟았다. 만물이 다 마음에서 지어졌다고 하면 이 세상은 오직 마음만 있고 손으로 만져지는 내 눈앞의 컴퓨터와 같은 물체는 없다는 말인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내 스스로의 오류가 조금씩 드러났다. 먼저 오직 마음만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에 의심이 가는 이유는 무의식중에 ‘마음은 이런 저런 것이다’라고 내 스스로 정의를 내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음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상(相)을 만들어 생각을 한 것이다. 먼저 상으로 정형화된 마음을 가지고 일체유심조를 풀어내려고 하니 당연히 풀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꿈의 예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사람이 한참 꿈을 꾸고 있으면 꿈 안에서 보이는 여러 사물이나 대상들은 실제로 내 마음 안에서 존재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사물들이 내 마음 밖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꿈에 코끼리를 보았다고 하면 꿈을 꾸는 당시에는 코끼리가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면 그 코끼리의 실상은 내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지 꿈밖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마음이 코끼리라는 상을 만들어 놓고 나서 그것을 보면서 마치 그 상 자체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마음 자체가 가진 습관 중에 하나가 스스로 만들어 놓고도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만들어 놓은 것은 결국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법계 전체를 언어와 분별로 조각내 근본 성(性)을 잊고 각기 다른 상(相)들의 집합체로만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마치 바다 수면 위의 가지각색의 파도는 보면서 바다는 못 보는 것과 같다. 중생들은 파도의 모습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가면서 그것들을 인식하지만 원래 파도는 바다와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바다가 있기 때문에 여러 형태를 가지고 나타나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파도)들은 원래부터 자성을 가지고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중생이 법계의 성(바다)을 못 보기 때문에 만들어낸 마음 안의 허상일 뿐이다. 마치 꿈속에서 코끼리만 보고 코끼리의 상이 나타날 수 있게 해주는 근본 바탕인 꿈꾸는 자의 마음은 전혀 인식하지 못 하는 경우와도 같다.

결국 깨달은 이의 관점에서 보면 원래 없는 상을 중생의 마음이 한 세계 가득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살고 있으니 이것을 바로 ‘일체유심조라 하는 것 같다. 즉, 내 눈앞에 보이는 컴퓨터 물체 자체가 내 마음이라는 뜻이 아니라, 컴퓨터를 하나의 상으로 만들어 바라보는 것이 내 마음의 작용이라는 뜻이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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