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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죽은 자의 공간 아니다

한국의 불교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법회와 행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살아있는 자를 위한 법회보다 죽은 자를 위한 행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사찰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49재(齋)를 비롯한 각종 제사와 우란분절를 기해 봉행되는 천도재와 특별히 마련되는 영산재와 수륙재도 모두 죽은 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식에도 맞지 않는 지장보살이 본존불의 협시보살로 봉안되고, 위패를 모신 영단(靈壇)이 법당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엄격히 말해서 영단은 법당 안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중국의 사원에서도 대부분 위패는 별도의 건물인 영각(靈閣)에 봉안하고 있다. 이러한 영각은 전체 사원의 구조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남방불교의 사원에서는 처음부터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은 전혀 없다. 죽은 자, 즉 귀신들을 법당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이교도로부터 ‘법당이 귀신들의 종합청사’라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즘 서양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공간 풍수’에 의하면, 신성한 공간(Sacred Space)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신성한 공간에 잡동사니, 즉 나쁜 기운을 품고 있는 위패들이 자리함으로써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게 된다. 이런 곳에서는 명상이나 기도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단은 성전(聖殿)이 아닌 별도의 건물로 내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각 사찰에서 납골당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청정한 수행과 포교 공간을 묘지화 하겠다는 발상이다. 납골당은 우리 나라의 묘지문제를 일시적으로 잠재우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 불교적 대안이 아니다. 진정한 불교도는 화장 후 별도의 납골당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스님들도 가능한 사후에 부도나 별도의 비석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부도나 비석은 또 다른 집착일 뿐이다. 우리는 티베트의 조장(鳥葬) 풍습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재가자의 유골을 부도나 탑파 형식으로 만들어 봉안한다고 들었다.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전통 사찰의 부도군은 경내가 아닌 입구나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무리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라고 할지라도 수행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납골당을 사찰에 유치하고자 추진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찰의 주지이거나 관리자다. 왜냐하면 당장에는 납골당을 통해 큰 수입이 들어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곳은 신성한 공간이 아닌 혐오의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율장에 의하면, 사찰은 도살장·묘소(공동묘지)·코끼리집·마굿간·감옥·술집·유막처(有幕處, 매춘 장소)가 없는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곳을 혐오시설이라고 하여 자기 주변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곳에서는 나쁜 기운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찰에 혐오시설인 납골당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사방승가(四方僧伽)의 소유물인 사찰을 황폐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당장 죽은 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가능한 억제하고, 살아 있는 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할 것이다. 각 사찰에서 준비하고 있는 여름 수련회와 같은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심신 계발을 위한 명상과 같은 프로그램은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찰이라는 공간도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아닌 살아 있은 자를 위한 공간으로 전환될 때, 죽은 불교에서 살아 있는 불교로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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