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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내용과 형식

기자명 법보신문

내용과 형식은 밀접하게 붙어있는 것
형식 갖춰지면 내용도 완성될 수 있어

우리 절에는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 식구들을 따라서 절에 종종 나오기 시작한 보살님이 한분 있다. 절에서 처음 얼굴을 뵌 지 벌써 2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사찰에 늦게까지 남아서 설거지를 하고 계시길래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보살님께서 법명을 가지고 계신지 한번 여쭈어 보았다. 아직 없으시다는 말씀에 주지 스님께 말씀드려 법명이라도 좀 얻을 수 있도록 한번 해 보자고 이야기를 드렸더니 겸손하셔서 그러신지 본인은 아직 불교에 대해 잘 모르고 신심도 많이 부족해 법명을 받을 만한 준비가 안 되었다고 대답을 하셨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또 한번 본 적이 있다. 3년전쯤 한국에서 큰 스님을 모셔와 대규모 수계법회를 한 적이 있었다. 아주 드물고 귀한 자리이다 보니 사찰에 있는 모든 신도님들께 가능하면 다 참석해서 계(戒)를 받도록 권하였다. 계를 받고 나면 큰 스님께서 법명도 한분씩 직접 지어 주시니 아직 법명이 없으신 분들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수계 법회를 잘 마치고 난 후 예전에 법명이 없으셨던 분들에게 그분들의 법명도 외울 겸 법명을 한분 한분 묻고 다녔는데 어느 보살님과 젊은 청년 한 분이 수계 법회에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이유인즉 계를 받고 나서 지킬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수계법회에 참석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말씀하신 분들 중에는 마음이 순수하고 착하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분들일수록 법명을 받는다든가 계를 받는 것에 있어 상당히 부담을 느낀다. 부담을 느끼는 이유를 보면 본인들이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으므로 어느 정도 본인들이 완성시킨 다음에 법명이나 계를 받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명이나 계를 일종의 형식이라고 본다면 형식 전에 내용이 먼저 완성되어야 된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형식이 먼저 갖추어진 다음에 비로소 내용이 보완되고 완성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본인이 좀 부족해도 일단 법명이나 계를 받고 나면 법명 받고 계 받은 인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형식을 치르는 과정 속에서 없던 신심도 생기고 계율을 지키겠다는 마음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막 말을 하기 시작하면 무조건 땡큐(Thank you)와 아이엠쏘리 (I am sorry) 라는 말을 가르친다. 조그만 아이들이 그 뜻을 알아서 한다기 보다는 부모가 처음에 시켰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냥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이들이 그 뜻을 이해하면서 정말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그 말 속에 담게 된다. 즉 형식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내용이 채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인들은 내용과 형식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내용만 있으면 형식은 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은 밀접하게 붙어 있다.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하나가 이루어지면 다른 하나도 자연스럽게 따라 오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신심이 부족할수록 법명을 먼저 받는 것이 결국에는 지혜로운 일이라 하겠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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