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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해라와 하지 말라

기자명 법보신문

십계-십선계 손바닥 뒤집기에 불과
금기어보다 긍정적 언어 권장해야

평생동안을 어설프게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 물러나 보니, 거울에 비친 늙은 모습이 보기 싫듯이 부끄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름하여 선생이라 하니 남보다 앞서가는 것같은 직업적 명칭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항상 남의 뒤를 따라 흉내내다 만 꼴이다.
내가 가르쳤다는 내용이 내 스스로의 말은 한 마디도 없지 않았던가. 책으로 전해지는 성현의 말씀이거나, 앞선 이의 선각적 의견에 동조하면서, 마치 나의 말인 듯이 가르쳤으니 위선이나 위장치고도 이보다 더한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 선생이 학생에게 지시하는 언어 중에 긍정적 권장의 어투보다, 부정적 금기의 어휘가 많았던 것을 회의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더러 있다. 교육의 지시어에는 왜 그리 “하지 말라”하여 전진을 가로막는 금기어가 많은지…. 청소년의 전진을 북돋으려면 “해라”하여 힘을 얹어 주어야 할 터인데, 권장한다는 말이 “하지 말라”이다.

놀지 말라. 어디 어디 가지 말라. 싸우지 말라 등등. 학생들이 돌아간 뒤 빈 자리에 남아 하루의 용어를 더듬어 보면 거의가 ‘하지 말라’였으니, 이것이 어찌하여 앞서 간다는 의미의 선생의 직함에 맞는 것인가. 실제로 교단에서 느꼈던 한 가지 사례이다.

그래서 금기적 어법을 권장적 어법인 ‘해라’형으로 바꾸어 보기로 하고 ‘공부해라’ ‘착해라’ 등등으로 변화를 주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1 자를 높여 놓은 교단에서의 위엄적 자세가 영 들어나지 않는 것이다. 동네 할아버지가 등을 두드리며 타이르는 애정어린 대화로는 적합하나, 다수의 어린이를 앞에 놓고 길을 인도하는 선생의 자세로는 맥이 빠진 느낌이었다.

여기서 가르침의 언어가 될 훈계, 경계, 권계 등을 살펴 보니, 그도 역시 금지적 가로막음으로 지표를 삼은 느낌이다. 역시 ‘하지 말라’이니, 교육이란 행위의 인도보다는 억제인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럴까. 사람이란 해야할 일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더 즐기는 본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본성을 뒤짚는 것이 교육일 수도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십계(十戒)’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심(貪心), 진심(嗔心), 치심(痴心).은 몸으로 저지르는 세 가지인 살생 투도 사음과, 입으로 악업을 짓는 망어 기어 양설 악구의 네 가지와, 생각으로 짓는 탐심 진심 치심의 세 가지 악업이니, 이것이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의 큰 경계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하지 말라는 구체적 지시어인 불(不)자를 얹어 불살생, 불투도, 불음사… 등등으로 바꾸면 “해라”의 긍정이 되면서 ‘십선계(十善戒)’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사람살이의 좋고 나쁨이라는 것이 손바닥의 앞 뒤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위의 십계나 십선계가 결국은 손바닥 뒤집기이다. 한쪽이 경계할 위험의 대상이라면 그 뒤쪽이 바로 실행해야 할 기쁨의 대상이다.

이렇듯 선악이란 백지 한 장의 손바닥 뒤집기이다. 그래서 인생만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괴롭고 즐거움이 마음에 있는 것이지 사물의 대상에 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다.

그 동안 금기의 경계어로 일관되었던 직업적 잘못을 이제는 권장의 긍적적 언어로 바꿔볼 때가 되었다. 동네 늙은이가 어린 손자의 등을 어루만지는 다정한 언어로 착해지라 사랑해라 하며 귀엽게 자라는 우리의 미래를 가꾸어 보아야겠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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