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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 생각이 영겁의 시간

기자명 법보신문

시간은 기준의 차이일 뿐 변함없어
순간을 성실히 사는 것이 참 지혜

모든 사물이 존재하려면 공간과 시간의 두 축이 맞물려야 형성된다. 하루의 삶에도 이 두 축의 시간 공간이 항시 변하면서 나의 존재도 거기에 상응하는 질적 변화를 가져 온다. 나라는 존재의 명분이나 직분이 이 시공의 변화에 따라 결정되고 결정된 명분이나 직분에 적의한 행위를 함이 가치 있는 삶이다.

지난 번에 공간의 크고 작음이 보기나름으로 동일하다는 생각을 서술해 보았으니 이번에는 시간의 평등을 생각해 보자. 예전과 지금, 어제와 오늘 등으로 시간의 흐름을 재지만 이는 기준을 어디에 두었느냐의 차이이지, 시간 그 자체는 항시 변함이 없다.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시간의 흐름에다 잣대를 그어 놓고 어제니 오늘이니 하여 자신을 그 시간 위에 싣고 다니면서 기쁨이나 슬픔을 생산한다. 365일로 1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정하고 거기에다 자신을 실어서 젊다 늙다 한다. 섣달 그뭄과 새해 설날의 그 찰나적 순간에다 매우 큰 의미를 둔다. 흐르는 시간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데 스스로 특수한 의미를 붙여서 기쁨이나 슬픔의 원인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바라는 소망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어린이의 처지에서는 한 살 더 늘었으니 자라나는 기쁨으로 즐거워 하고 늙은 이는 한 살 더함이 늙음으로 다가오니 서글픔으로 아쉬워 한다. 이 기쁨과 아쉬움을 시간의 탓으로 돌리지만 이것이 어찌 시간이 감당해야 할 일인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로 시간을 재단하여 놓고는 자신이 거기에 얽매이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고려시대 진각국사의 설날 법문이 새삼 진리로 다가온다. 어린이는 한 살 더했으면 하고 늙은 이는 한 살 덜했으면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더한다 덜한다는 생각을 한 곳으로 집어치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따라오는 기쁨 아쉬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보면 “한 생각이 곧 무량의 영겁이니 9세와 10세가 서로 마주친다(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함이 있다. 아무리 한량 없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이는 결국은 한 생각의 찰나의 연속이니 무한이라는 표현 자체가 의미가 없다. 여기서 한 생각이라는 일념이 얼마의 길이인가. 『법계도기총수록』에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머리칼 하나를 세로로 가르되 이것을 10분, 100분, 천분의 1로 갈라서 유리 위에 놓고 예리한 칼로 내리칠 때, 이 칼날과 유리판이 맞닿는 순간이 1념의 찰나라는 것이다. 이렇듯 순간의 찰나가 영겁의 시간과 같다는 것이니, 이는 이 일념의 순간이 없으면 영겁도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 단위를 현재의 존재에다 기준을 두어 과거니 미래니 하여 구분을 하고 거기에다 또 과거 현재의 세 등분을 넣어, 과거의 과거, 과거의 현재, 과거의 미래. 현재의 과거, 현재의 현재, 현재의 미래. 미래의 과거, 미래의 현재, 미래의 미래라 한다. 이를 일러 9세라 하지만 여기에 나까지 포함되는 10세의 시간의 당체를 집어 넣지 않으면 이 9세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혹여 영원이라 할 수 있는 이 9세가 현재 나라는 존재적 시간이 없다면 그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천분의 1로 쪼개놓은 머리칼이 유리 위에서 잘리는 찰나의 1념의 시간과 바로 영겁이 맞닿을 때 시간의 주체인 내가 정확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영겁의 시간의 흐름 속의 실재자이지 내가 배제된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상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머리칼을 천분의 1로 자르는 구별의 실상도 알아야 하지만, 영겁으로 통합하는 종합된 실상으로 융합하는 지혜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것이 어찌 보면 순간순간을 성실히 사는 삶의 틀일 것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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