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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 지금 말하는 사람

기자명 법보신문

말속에 본래말 없고 사람만 있어
일체의 이름은 마음의 다른 이름

가을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은 바다는 더욱 푸르고 몽돌 밭에는 사람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지난 이야기만 구르고 있다.

시(詩)의 말들이 산처럼 쌓여 솟아오른 섬인가. 시선도(詩山島) 이름이 참 예쁜 섬이다. 선원의 좌향이 이 섬의 뾰쪽한 문필봉과 마주하고 있어서 처음 인연이 되었다.

오늘처럼 가을비 그친 후 청산같이 바다가 훤칠하게 트여 끝이 없는 날에는 수평선 저 너머의 세계가 그립고 걸어서 그 섬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문득 일어난다. 낮에는 멀어서 갈 수가 없지만 어둠이 내리는 밤에는 집집마다 걸리는 등불이 앞마당과 만나고 있어 더 없는 이웃처럼 가까워진다.

시(詩)자를 파자해 보면 절에서 쓰는 말을 시라고 하는데 사실 절에서 쓰는 말속에는 본래 말이 없고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만 있다. 부처라는 말이 있고 조사라는 말이 있고 마음이니 불성이니 해탈이라고 해도 다만 소리와 명칭과 글귀가 있을 뿐이다. 일체 이름은 마음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임제스님께서는 부처와 중생이라는 옷을 입고 번뇌와 보리라는 옷을 입는다고 해도 옷 입는 사람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데 어리석은 학인들은 말끝을 좇아서 일체 이름의 옷에만 관심이 있어서 옷 입는 사람을 외면해 버리고 끝없는 생사의 고통을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육학년 때로 기억이 난다. 모든 말들을 의심하다보니 끝내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마지막 호흡이라는 말을 의심 했을 때는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당황해서 선생님께 물어 보았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선에서는 팔만대장경이 결국에는 마음 심(心)자 한자인데 마음만 깨달으면 누구나 본래 부처라고 했다. 조사의 관문을 선에서는 공안 화두라고 하는데 화두는 말 머리로써 일체 말이 나온 자리이고 깨달음을 바로 지시하는 말이며 지금 눈앞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다.

존재의 세계는 언어의 세계이며 존재의 고통은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이다. 그래서 선에서는 말 이전의 세계인 화두를 제시함으로써 일체의 고통과 속박을 벗어나서 해탈을 이루게 한다.

바람은 향긋한 갯내음을 선방으로 실어 나르고
어둠이 내리면 집집마다 걸리는 마음의 등불
가까이 다가가서 두드리면
누구네 집엔들 부처 없으리.


이번 주부터 세심청심이 다시 연재됩니다. 필진은 고흥 금천선원에서 납자의 길을 걸으며 대중에게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일선 스님과 서울 법련사 주지로 대중교화에 앞장서고 있는 보경 스님입니다.


일선 스님 haejoum@ggse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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