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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가을과 함께한 추사 김정희

기자명 법보신문

초의 ‘차’ 답례로 쓴 ‘명선’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다. 황금 들녘이 그렇고, 아직은 어설퍼 보이는 단풍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도 곧 풍성해 질 것이다. 이백(李白)이 “의고(擬古)”에서 “달빛은 쓸 수 없고, 나그네 시름 다 말할 수 없네. 맑은 이슬 가을밤에 생기고, 이리저리 나는 반딧불, 풀 위를 난다네.(月色不可掃 客秋不可道 玉露生秋夜 流螢飛百草)”라고 했지만 어디 이백(李白)만이 가을을 노래했으랴. 마음 열고 세상일에 매이지 않는 이, 이만한 경계쯤이야 풀잎 위에 티끌이라.

올 가을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거 1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과천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추사 글씨 귀향”은 추사연구에 평생을 받쳤던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선생이 기증한 추사 관련 자료전이며,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은 “추사김정희 학예일치의 경지”는 추사의 학문세계와 예술의 경지를 두루 살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한편 추사 전시의 압권(壓卷)은 아무래도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의 “추사150주기 기념” 전시라고 하겠다. 전시관을 들어가기 전 분위기를 띄우는 건 고즈넉한 석탑 사이로 피어난 야생 국화, 수백 년을 족히 살았을 향나무의 용트림, 추사의 예술세계만큼이나 장중하고 또렷하다. 특히 ‘명선(茗禪)’은 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추사의 예술을 사모하는 이들은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명필이다.

‘명선’ !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 만큼이나 차와 선의 관계를 선명히 들어 낸 언어가 또 있을까. 추사는 초의선사가 손수 만든 차를 받고 그 답례로 이것을 써 보냈다. ‘명선(茗禪)’ 양 옆으로 빼곡하게 쓴 협서의 내용에서 추사의 차에 대한 열의와 초의대사에 보내는 따뜻한 우정과 존경을 짐작할 수 있다.

“초의가 손수 만든 차를 보내 왔다. 이 차는 몽정차(蒙頂茶)나 노아차(露芽茶)와 비교해도 그 맛과 효능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써서 그 성의에 보답하되, 백석신군비(白石神君碑)의 필의(筆意)로 쓴다. 병거사(病居士)가 예서(隸書)로 쓰다.(草衣寄來自製茗 不減蒙頂露芽 書此爲報 用白石神君碑意 病居士隸)”

초의선사가 어느 시기부터 추사에게 차를 보냈는지는 아직 연구가 미흡하다. 수락산 학림암(學林菴)에서 해붕노화상(海鵬老和尙)을 모시고 있을 때 처음으로 추사와 상면(相面)하였으니 이때가 을해년(乙亥1815)이라, 그의 나이 30세 이었다. 동년배(同年輩)이었던 두 사람은 이 날 이후 평생의 지기(知己)가 되었다.

40여 통이 넘게 보낸 편지와 간간히 발굴되는 추사의 유서(遺書)는 차를 통한 그들의 돈독한 우정을 드러내기에 족하다. 추사가 언급한 몽정차는 중국 사천성 명산현의 몽산(蒙山)에서 나는 천하제일의 명차(名茶)로 상청봉(上淸峯)에서 자란 차나무로 만든다. 노아차 역시 강소성 강녕현 방산에서 나는 명차로 후대에 명차(名茶)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러한 중국 명차와 비교하여도 품질이 뒤 떨어지지 않는다는 추사의 극찬은 초의선사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며, 지기(知己)만이 서로 알았던 차의 경지를 말한 것이다. 19세기 조선의 차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의 서로간의 격려이었다.

동아시아 차 문화 연구소 소장 dongasiac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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