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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선불장

기자명 법보신문

가을 가뭄을 해갈하는 단비가 푸른 바다를 지나가지만 일념도 없는 무심도인의 경계인양 아무런 흔적이 없다.

바다가 저렇게 깊어진 것을 보면 백천 강물을 받아들이되 아무런 조작이나 시비가 없어 늘거나 줄지도 않고 취사와 단멸상이 없으니 앞 물결이 뒷 물결을 방해하지도 않고 범성이 없어 일미의 한 맛으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방거사는 단하 스님과 함께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어느 행각승을 만나서 참으로 공부가 아까우니 부처를 뽑는 곳에 가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 수만 수레에 달하는 재물을 상강의 물속에 던져버리고 하는 말이 “세상 사람들은 재물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나는 순간의 고요함을 더 귀하게 여긴다.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만 고요함은 진여의 성품을 드러낸다”고 하면서 석두 선사를 거쳐 바로 강서로 마조 대사를 찾아가서 물었다.

일체 존재와 상관하지 않는 자, 그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 스님은 그대가 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시고 나면 일러주겠다고 대답을 했다. 방거사는 그 말에 단박 깨닫고 오도송을 지었는데 “시방의 모든 납자들이 함께 모여서 저마다 함이 없는 도를 배우나니 이곳은 부처를 뽑는 도량이라 마음이 비워서 급제하여 돌아간다”고 하였다.

조주스님께서는 그것은 사람도 아니라고 했으니 필경 부처도 아닐 것이며 일체 이름이 끊어졌지만 이렇게 움직이고 글을 쓰고 있으니 없는 것도 아니다. 옛 선지식들은 오직 그것 하나를 위하여 산 넘고 물을 건너 난행고행을 하였으며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버렸다.

출가한 스님네들은 모두가 세상의 명예를 헌 신짝처럼 던져 버리고 부처를 뽑는 도량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방을 선불장이라고 하듯이 결제가 시작되면 서로 먼저 공문에 합격하기 위하여 졸음을 쫓으려고 저마다 몸부림을 치며 묵언과 함께 일종식으로 장좌불와를 하면서 용맹정진을 하기도 한다.

절집에 선거철이 다가 왔는지 평소에 소식이 없었던 스님들이 안부를 물으며 부질없는 줄 알지만 부득이하게 출마하게 되었노라고 잘 부탁 한다는 말을 한다.

세상사 한 바탕 꿈인 줄 알고 부모 형제를 버리고 발심 출가하여 오로지 공문에 합격하여 부처가 되겠다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혹시나 명예나 권력욕에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 볼 일이다. 참으로 원력을 가진 보살행자라면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에 서나 주인이 될 수 있겠지만 자기의 문중을 위해서 부처님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거나 세상 선거에서도 사라져가는 금품을 돌려서 시비나 조작으로 평상심을 잃어버린다면 가득이나 어려운 현실에서 많은 대중들을 실망 시킬 것이다.

불법 문중에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고 했는데 모처럼 선거장에서 옛 도반 스님들도 만나고 탁마의 기회로 삼아서 경계를 점검 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 문체 없는 도장을 찍어 저마다 공문에 합격하여 그림자 없는 땅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허수아비 사라진 들판엔
새들의 발자취 끊어지고
황금빛 물결 출렁이는
더없이 넉넉한 시절이라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haejoum@ggse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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