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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중생의 번뇌가 부처님경지

기자명 법보신문

잡생각-바른생각 거리는 과연 얼마
중생-부처 나누면 어디서 무엇 얻나

모든 사물 존재는 결국은 이것과 저것의 사이이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듯이,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밤이 있어서 낮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둠으로 가려지면 밝음이 사라져 이 둘의 사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 저쪽의 한쪽은 잊어버린다.

어제는 근년에 보기 드문 눈이 내렸다.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 버려 어제 낮까지 존재했던 자연초목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되니 그 속에 있을 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얀 은빛의 세계에만 감탄을 하고 있다. 순간으로 변한 눈 앞의 모습을 이렇듯이 몰라보는 것은 항시 현물존재의 한 면만을 보라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범상한 이들의 밝음이 없는 무명(無明)의 탓이다. 이러한 무명이 어찌보면 여러 잡생각들의 번뇌인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번뇌로 사는 것이 범상한 중생들의 일상사일 것이다.

무명의 중생들이 바르게 생각하겠다는 그 생각 자체가 번뇌의 출발일 듯도 하다. 그러나 이 바르게 생각하려는 생각 자체도 없으면 밝음으로 가는 수양 자체가 없으리니 그렇다면 번뇌 없이는 깨달음의 길로 들 여지도 없는 셈이 된다. 그러니 번뇌가 바로 깨달음인가? 또 생각의 갈래에 혼돈이 온다.

마음 닦이의 첫 발걸음을 잡생각을 버리는 것이라 하지만, 잡생각이 없으면 마음을 닦겠다는 생각 자체도 일지 않을 것이니, 마음 닦이의 출발이 바로 잡생각인 셈이다.

여기에서 잡생각과 바른 생각의 거리는 얼마이며 확실한 갈림의 접점은 있는 것인가. 참으로 손등과 손바닥의 사이이다. 잦히면 손바닥이고 엎으면 손등이다. 여기에서 옛 성인이 사람살이의 진리를 설명하며 손바닥을 가리켰다는 말을 이해할 법도 하다. 그러니 번뇌가 곧 깨달음인가. 오늘 나의 이 글도 이러한 번뇌에서 출발한 셈이다.

여기에서 부처님과 문수보살의 문답이 연상된다. 세존께서 문수에게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어디에서 찾는 것이 마땅하냐” 하니, 문수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당연히 일체중생의 번뇌의 경계에서 찾아야 하지요” 하였다. “어째서 그러하냐” 하니, “만약 올바로 중생의 번뇌를 이해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경계이니까요” 하였다는 것이다.

무명 중생의 생각이 번뇌라면, 이 중생들의 생각이 바로 부처님이 깨우치려는 첫 생각이었던 것이다. 번뇌가 곧 깨달음인 셈이다. 부처님이 이 번뇌가 없었다면 깨달음으로 이를 길은 없었던 것이니, 중생의 번뇌가 바로 부처의 경지인 것이다. 부처님의 경지를 중생과 갈라놓고 찾는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는 것이 깨달음일 것인데.

밤이 없으면 낮이 없듯이 번뇌가 없으면 깨달음이 없다. 잡생각이라 하여 생각을 거부하면 깨달을 길은 영영 없는 것이다. 범부의 생각은 그 생각대로 생각할 만한 것이 있고, 성인은 성인다운 생각의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공자가 말씀하신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지내기보다는 장기 바둑도 나으니라” 하심이 일리가 있음을 알겠다. 결국 모든 일이란 이것과 저것의 맞물림이니, 이 맞물림의 경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바름과 그름의 갈림일 듯하다.

위의 세존과 문수의 문답에서 중생번뇌가 곧 부처님 경계라는 ‘곧(卽)’의 한 글자의 의미가 오묘하다. 곧은 이것과 저것이 합친 것도 아니고, 서로 배반된 것도 아닌 ‘바로 곧’의 의미이니, 마주침의 찰나의 경계가 바로 곧 그 자리인 셈이다. 이쪽 저쪽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계이니, 중생과 부처의 경계가 바로 곧 그 자리인 것이다. 오늘도 이 중생이 다 부처임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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