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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종교학자의 길 찾기

기자명 법보신문

“책을 샀다…. 머리말을 읽었다…. 머리말에서부터 나를 울리는 저자의 고백이 참 좋다…. 그녀는 얼마나 솔직하고 진실하게 종교를 향한 자신의 삶을 털어놓을까? 벌써부터 이 책을 종일 읽고 싶어 나는 안달이 났다.”

어느 날 저녁에 쓴 독서일기입니다.

영국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인 『마음의 진보』가 한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녀의 저서인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를 막 읽었던 터라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마치 구도자 싯다르타라도 된 양 아주 열심히 고민하고 사색하고 수행하는 모습을 절실하게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교학자의 자서전인 만큼 남다른 감동을 미리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신을 만나기 위해 들어간 수녀원, 그곳에서 카렌은 아주 열심히 수련에 임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수록 신의 존재 자체가 의아스러웠고,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의문은 그녀를 순종이 미덕인 수도자의 길로 걸어가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진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내 정신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선입견을 뒤틀어서 대낮처럼 환한 진실을 부정하게 만든 것이다”라고 카렌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녀의 길을 충실하게 밟을수록 자신은 더더욱 냉정해지고 삭막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카렌은 걸핏하면 쓰러지곤 하였는데 육체적인 병의 원인을 나약한 정신력과 게으름으로 돌리며 죄인처럼 몰아세우는 종교계의 행태로 인해 결국 카렌은 “이 모든 것이 조금은 역겹기조차 했다. 나는 신과 갈라섰고 정말로 신이 있었다면 신도 오래 전에 나와 갈라섰다”고 선언하고야 맙니다.

하지만 카렌 암스트롱은 길고도 고된 세속의 신고식을 치르게 됩니다. 어찌된 일인지 당연히 그녀의 몫이 되어야 할 세속의 권리들이 그녀를 비켜갔습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의 존재를 기껏 부정해 놓고는 이번에는 자기 심장에서 붉게 솟구쳐 오르는 ‘자기다움’을 애써 외면한 채 ‘남들 하듯이 그리하면 행복할거야’라는 생각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나서야 카렌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더 넓고 근사한 계단에 올라타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초라한 나의 계단통으로 돌아갔을 때 그전에는 미처 몰랐던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나는 혼자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내 몸도 덩달아 돌고 내가 발 디딘 곳은 좁지만 그래도 빛을 향해서 올라가기를 나는 바란다”라며 카렌은 자서전을 끝맺었습니다.

일생에 한 번 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을 전폭적으로 부정해보기.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모든 의제로부터 자신을 철저히 해방시켜 보기.

이 모험에 나선 사람은 이제 나선형 계단으로 천천히 오르게 된다고, 하지만 계단의 저 끝에는 눈부신 빛이 있으니 지레 절망하거나 두려워 말라고, 진정 가장 ‘자기다움’을 추구하라고 카렌은 책을 읽는 그 긴 밤 동안 줄곧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마음의 진보』
카렌 암스트롱 지음 / 이희재 옮김
교양인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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