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6 즐거움과 괴로움

기자명 법보신문

즐거움과 괴로움은 백지 한 장 차이
정상-비정상 사이서 경계 늦추지 말자

세상만사 모든 것이 손등과 손바닥 사이이고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게 마련이다. 즐거움이나 괴로움의 차이도 마음먹기에 따라 그야말로 백지 한 장의 차이이니, 손바닥을 뒤집는 사이일 뿐이다. 사람살이의 도덕적 가르침도 따지고 보면 이 즐거움과 괴로움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대한 권장과 경계의 갈림을 제시한 것이다.

동양고전의 전형적 시가집이라 할 수 있는 『시경』은 305수의 시를 모아 놓은 것인데, 전하는 말로는 공자가 수집 편찬했다고 한다. 공자가 305편을 가려 놓고서 한 말이 “이 시 300여 편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간사한 생각이 없다(思無邪)’이다” 하였다. 그러니까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 시들에게는 간사한 생각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역설적 논리가 형성된다.

생각에 간사함이 없이 이해하려면 어떻게 보아야 하나, 그 해답을 바로 이렇게 지시한다. 사람살이의 진실이란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고(樂而不淫), 슬퍼하되 마음 상하지 말라(哀而不傷)’는 것이다. 즐거움이나 슬픔은 정상적인 감정인데 이것이 조금만 중심을 잃어도 음란이나 상심의 부정으로 기울어진다. 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그야말로 백지 한 장의 차이이요, 손등과 손바닥의 뒤집음이다. 그래서 즐거움과 슬픔의 정상적 정서에 음란과 상심의 부정적 정서를 차단하는 ‘말라(不)’의 한 단어로 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남녀의 사랑이란 극히 즐거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즐거움의 선이 조금만 기울어도 음란으로 가고, 이별이란 슬픔이 당연한 것이로되, 조금만 조절을 못하면 마음이 상하여 극단적 행위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 항상 경계의 마음을 늦추지 않도록 선을 긋자는 것이 ‘말라’의 한 단어였던 것이다.

신년호에 필자가 졸렬한 글씨로 ‘慈悲度世音(자비로이 세상을 제도하는 소리)’이라 하여 법보신문의 사명이나 기대로 삼아 본 것인데, 이 자비란 용어도 따지고 보면 즐거움과 괴로움의 대칭 속에서 이루어지는 용어이다.

자(慈)의 사랑은 중생을 사랑하여 즐거움을 주는 것(與樂)이고, 비(悲)의 슬퍼함이란 괴로움을 함께 느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그 괴로움을 제거하는 것(拔苦)이다. 부처님께서의 큰 깨달음도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여겨 이를 벗어나게 하려는 마음에서 이룬 것이 아닌가. 이를 일러 ‘한 몸으로 여기는 큰 슬픔(同體大悲)’이라 하지 않는가.

자비에는 세 종류가 있어, 첫째는 생연자비(生緣慈悲)이니, 삶으로 인연되는 자비이다. 곧 중생자비로서 일체의 중생을 어린 아이처럼 여겨 즐거움을 주거나 괴로움을 제거시키는 자비이다. 이것은 평범한 범인의 자비이니 소비(小悲)라 하기도 한다. 둘째는 법연자비(法緣慈悲)이니, 모든 진리를 깨우쳐 내가 없음의 무아의 진리에서 연기되는 자비이다. 이는 보살의 자비이니, 중비(中悲)라 하기도 한다. 셋째는 무연자비(無緣慈悲)이다. 차별의 이연이 되는 알음알이를 영원히 잊어 분별하는 마음이 없이 일어나는 절대 평등의 자비이니, 이는 부처만이 갖추고 있는 자비이다. 그래서 이를 일러 대자대비라 한다.

우리네 범부로서는 당연이 있어야할 생연자비마저도 실현할 능력이 없는 것 같으니 자비라는 용어를 떠올리기도 부끄럽지만,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에 소원으로 써 본 한 구절이기에 그 의미를 다시 짚어보는 것이다. 비록 실현에 자신은 없지만 한 해의 소원으로 간직하겠다는 마음이라도 쇠퇴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신년 벽두의 화두로 삼아 본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