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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자유로워야 행복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보이기 위한 말과 행동
행복 멀고 공허감만 커
욕망 벗어나야 행복 알아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시던 때였다.

한 바라문이 길 위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다. 그의 고행은 가시덤불 위에 눕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누가 보면 가시 위에 올라가고 사람이 없을 때는 다른 곳에서 쉬었다.
어떤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물었다.

“당신은 가시덤불에서 뒹굴고 자기 몸을 괴롭히고 있는데 보기가 딱하네. 좀 살살 하면 어떤가? 억지로 몸을 굴려 육신을 괴롭힐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자기를 무시한 것으로 느껴 노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보란 듯이 더 심하게 몸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때 우바새(불교의 남자 신도, 여자신도는 우바이) 한 사람이 그 광경을 지나가다가 보았다. 바라문은 보는 사람이 더 생기자 더욱더 요란하게 굴러 다녔다. 우바새가 바라문에게 충고했다.

“자네는 지금까지 작은 가시로 몸을 상하게 했는데, 이제는 노여움이라는 큰 가시로 온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드는군. 이전 가시는 아주 작아서 상처가 대단치 않았지만, 지금의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이라는 가시는 매우 깊이 박히고 있네. 가시에 찔리는 고통도 보통은 아니지만, 탐진치의 고뇌는 아주 먼 훗날까지 몸을 찔러 영원히 고통스럽게 만들 거네. 자네는 하루 속히 마음의 눈을 떠서 그것을 제거하도록 하게나.” 그리고 게송으로 말했다.

가시덤불에 누워 몸을 괴롭히며
괴로움을 가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탐진치 때문에 괴로움만 더하여
언제까지나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네. 『대장엄경론』

가려움증을 예로 들어보자. 본능적으로 우리는 긁는 행위로써 가라앉히려고 한다. 그러면 당장은 시원한 기분이 들지만 가려움증은 다시 찾아오고, 전보다 더 참기 힘들어 강도를 더해 심하게 피가 날 때까지 긁게 된다. 완화 시키면 치유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만 몸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반대로 가려워도 긁지 않고 참는 것은 그 행위가 치료와는 무관하다 할지라도 가려움의 불이 스스로 소멸되도록 하는 것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2세기 인도의 불교학자인 나가르주나의 말씀은 이렇다. “가려울 때 긁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가렵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나는 긁는 길을 택하겠다”고 한다. 행복의 구성요소는 간단하다. 그것은 결국 마음상태다. 어떤 일과 생각으로 인해 만족을 느끼는지 생각해보라.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저 고행하는 바라문처럼 남에게 보이기 위한 말과 행동은 공허하다. 행복과 성공적인 삶의 비결은 현재 해야 할 일을 하는 데서 오는 것, 행복을 배우자.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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