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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의 참 엉뚱한 아버지 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은행나무 / 9,400원.

지로의 아버지는 괴짜입니다.
일정한 직업도 없어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가족들은 살아갑니다. 좁은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버지는 185cm의 거구에 목소리는 우렁우렁합니다. 그런 거인이 종일 하릴없이 지내다가 공무원들이 찾아와 연금을 내라고 독촉하면 자기는 ‘국가’를 거부한다질 않나 ‘국민? 그거 나 싫어. 그러니 국민이 아닌 내가 세금 낼 필요 없지?’라며 도리어 큰소리로 일장 훈계를 합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방패가 되어주어 그럭저럭 견디는 지로입니다만 가정방문 온 담임선생님에게 국가(기미가요)제창에 대한 의미를 따지고, 학교까지 찾아가서 수학여행비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며 소란을 피우는 아버지와는 친해지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창피해서 학교가기 싫다고 불평을 하면 아버지는 한술 더 뜹니다.

“내가 언제 너더러 학교 다니라고 그랬냐?”

몽정을 시작하고, 중학생 깡패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여자목욕탕을 훔쳐보려고 어둔 밤에 자전거로 내달려야 하는 지로는 정말 바쁩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제 몸은 끼니마다 서너 공기씩의 밥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세상에는 유혹도 많고 폭력도 난무하고 모범적인 삶이 있는가 하면 불의에 굴복하며 그 밑에 기생하는 삶도 있습니다. 이런 뒤범벅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로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멋진 남성의 표본이 되어주어야 하거늘 11살 소년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절망적이었습니다.

대체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저러고도 한 집안의 가장이랄 수 있는지…, 어머니는 저런 아버지 뭐가 좋다고 결혼을 했단 말인지….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를 즈음 지로는 우연한 기회로 아버지의 정체를 하나씩 알게 됩니다. 1960년대 일본 사회가 소위 ‘좌익 운동’에 거세게 휩쓸리던 즈음, 아버지는 그 운동권의 가장 중심에 서 있던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좌익계의 거물?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좌익 우익 가릴 것 없이 아버지는 ‘다 싫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 안달이지.”

결국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오키나와의 아주 후미진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리조트 건설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겨우 마련한 집이 부서지는 위기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뜻을 함께 한 지로. 결국 살던 집은 철거를 당하고 아버지는 또다시 일탈을 시도합니다. 영원한 동지인 아내와 함께 옛날부터 이상향으로 꿈꾸어오던 ‘파이파티로마’로 떠나갑니다. 떠나면서 아버지는 말합니다.

“지로,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지로는 아직 아버지를 완전하게 알지 못합니다. 여전히 학교 다니는 건 재미있고 도시 생활은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세상으로 나아가는 걸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아버지의 말은 소년의 가슴에 시퍼런 태평양의 기운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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