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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善, 그리고 불교

기자명 법보신문

‘중간과정’없는 개혁은
혼돈과 무질서만 초래

善의 실천 위한 과정은
불교가 담당해야할 몫

최근 프리드리히 쉴러(1759~1805)라는 근대 서양 철학가와 관련된 글을 읽었습니다. 미학에 대한 그의 견해가 담긴 짤막한 글이었는데,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개혁 스트레스’에 대한 원인 규명과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반가움에 몇 번이나 읽게 되었습니다.

본디 제가 서양철학에 대한 상식이 턱없이 부족한 터라 쉴러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부득이 ‘여러 번 반복해 읽다보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선현의 가르침에 의지해 쉴러가 말하려는 의미를 어설프게나마 혜량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많은 프랑스 인들은 혁명의 성공이 가져다줄 새로운 희망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폭발적으로 일어난 대중들의 ‘야만적인’ 욕구폭발이나, 무분별한 개혁의지에 의해 희생되고 말았지요. 비록 증오했던 절대왕정을, 그것을 대변했던 계급과 함께 쓸어버리는 일은 이뤄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구성원들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하는, 보다 정의로운 사회질서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다른 형태의 혼돈과 무질서가 난무한 것이지요.

쉴러의 눈에 부당한 권력의 상징인 자연국가가 정치적·도덕적 이념들의 실패를 통해서 간단하게 제거된다거나 도덕적으로 정화된 이성국가로 곧바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 혁명 이후의 과정으로 명백해졌습니다. 쉴러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인간의 실존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면 과도기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이 이성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누구나가 이성에 따르는 것을 현실적으로 행하려면 반드시 중간과정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쉴러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인간은 사유할 뿐 아니라 느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속에서 인간임이 증명되므로 인간성의 완성은 도덕적 법칙을 가지고 자연스러운 감각을 억압하는 데 있지 않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거나 이성이 감정을 지배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의무와 경향이 일치하여 이성과 감정 두 가지가 같은 정도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이런 쉴러의 생각은, 물론 그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국가는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개인 속에 있는 주관적이고 특수한 성격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 속에 이성의 진리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은 ‘예술(미적 형성충동)을 통해서’라고 결론짓습니다. 예술이 인간을 직접적으로 개선시킬 수는 없지만, 필연적이고 영원한 것을 인간의 충동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면서 인간에게 선(善)에 대한 가능성을 되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혁이라는 도덕적으로나 명분으로나 거의 완전해 보이는 캐치프레이즈가 우리 국민들에게 피로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쉴러의 지적처럼 어떤 중간과정을 간과한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 개혁의 명분에 묻혀 개인의 자율성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았는지, 개혁 어젠다를 국민의 가슴에까지 전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는지, 변화를 두려워하는 본능적 감정을 개혁의 당위성이라는 이성으로 상처 입히지는 않았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과정! 인간에게 선 의지를 가져다주는 그 중간과정은 예술과 함께 종교의, 특히 선의 실천(衆善奉行)을 중시하는 불교가 담당해야 역사적 몫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대표이사〉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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