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자리 한 뼘이 모자라는 불교
마음자리 한 뼘이 모자라는 불교
  • 법보신문
  • 승인 2007.01.23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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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능행 스님 지음 / 도솔

아무리 준비해도 항상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죽음에 대한 준비입니다.

근사한 묘 자리를 마련하고 안동산 최고급 수의를 준비해도, 능력 있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깔끔하게 유언장을 작성해두어도 죽음 앞에 서면 우리는 놀라고 당황하게 마련입니다.
천군만마의 호위를 받으며 살았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홀로입니다. 어지간히 세상을 제대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저 혼자 떠나야 할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에 나설 배짱은 별로 없어들 보입니다. 그렇게 겁 많은 우리를 위해 이승의 문지방까지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호스피스입니다.

‘누구나 죽지. 암, 영원히 살 수는 없어’라며 큰소리치면서도 정작 자기가 죽어 없어질까 봐 허둥대는 사람들. 그런 우리를 위해 호스피스인 능행스님이 쓴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재작년 초가을입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려고 읽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두 눈이 퉁퉁 붓도록 나를 울린 사연들은 지금 다시 읽을 때에도 내 눈물샘을 자극하고야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찾아온 죽음에 어리둥절해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거부하다가는 끝내 이런저런 맺힌 마음을 풀어놓고 작별인사를 건네었습니다.

예전에 읽어버린 책을 다시 펼친 것은 몇 주 전 부산의 한 암자에서 벌어진 지종 스님의 죽음 때문입니다. 스님의 최후를 ‘입적’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불자들이 막연히 동경하는 덕 높은 스님들의 ‘위대한’ 입적과 ‘여법한’ 다비식은 행여나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들기 때문입니다.

기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스님들의 최후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서글프고 안타깝습니다. 참 많은 스님들이 평생 선방 다니며 수행하고 포교하느라 토굴 하나 마련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아무 생각 없이 세월만 보내고 신자들의 공양만 축낸 결과라면 굳이 언급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다가 병을 얻고, 자신에게 올려지는 공양물을 대중에게 모두 돌리고서 무소유의 다짐으로 일관한 스님들 중에 마지막 누울 자리 하나 얻지 못해 내팽개쳐진 모습들을 대할 때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는지 바닥에 달라붙어 썩어가는 이부자리에서 홀로 마지막을 기다리면서도 몇 푼의 돈을 능행스님의 손에 쥐어주며 불교병원 하나만 세워달라고 당부할 때는 차라리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땅을 제일 많이 가진 종교가 불교인데, 중이 지 죽을 자리 하나 없어 남의 병원에 와서, 그것도 이렇게 큰 십자가 아래 누워 죽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노?”
한 스님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렇게 탄식하다가 스님들 늙거나 병들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달라는 소원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땅이 많다고 해서 댓바람에 뚝딱뚝딱 병원이고 요양소를 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저런 핑계를 댈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지종스님의 경우를 보자니, 스님들이 차디찬 곳에서 외롭고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병원 지을 땅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 길을 걸어가는 도반을 배려하는 마음자리 한 뼘이 모자라서 그런 것 같아 먹먹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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