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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수계식 의미-계체의 획득

기자명 법보신문

악행 짓지 않겠다는 계체를 얻는 것
선행 닦겠다는 ‘절실한 의지’ 가져야

며칠 전에 반가운 메일 한통을 받았다. 2년 전 쯤, 필자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보내 온 새해인사 메일이었다. 속 썩이는 자식이 효도한다 했던가, 그 당시는 통제가 안 될 만큼 산만한 청강 태도로 필자의 마음을 그리도 상하게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가끔 소식을 전하며 안부를 묻곤 한다. 이번에는 얼마 전에 받은 수계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동안 사이비 불교신자로 살다가, 최근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 주지스님의 권유로 계를 받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괜히 계를 받은 것은 아닐까 요즘 들어 후회막급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계를 받고 나니 그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신경 쓰이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술 한잔 할 때도 왠지 찜찜하고, 친구에게 장난삼아 하던 거짓말도 마음에 걸리고, 방에 들어온 바퀴벌레 한 마리 때려잡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게다가, 계를 받은 이상 흉내라도 내고 싶은데, 마음만 거북할 뿐 하는 행동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지박약한 자신의 모습이 더욱 더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했다. 그는 수계식의 효과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인연에 의해서든 일단 불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수계식이란 것을 치루게 된다. 수계식이란 일반인에서 재가불자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로서, 지금껏 일반인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앞으로는 불교의 정신에 근거하여 우바새(남성재가신자), 우바이(여성재가신자)로 살아가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자리이다. 수계희망자는 수계식을 통해 불교도로서의 이름, 즉 법명(法名)을 얻게 된다. 그리고 불교도가 실천해야 할 행동 윤리를 내용으로 하는 계라는 것을 받게 되는데, 바로 계를 받는 이 행위가 말 그대로 수계식의 핵심 부분이다. 그렇다면 수계식을 통해 계를 받는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부파에 따라 의견에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계체(戒體)’의 획득이라는 관점에서 수계식은 매우 중시된다. 계체란 계의 본체라는 의미로 방비지악(防非止惡)의 힘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오계를 받은 자가 그 후의 생활에서 오계의 영향으로 인해 더 이상 살생이나 거짓말 등과 같은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주는‘보이지 않는 힘’, 이것이 바로 계체이다. 위에서 소개한 필자의 제자가 계를 받은 후 느꼈던‘악행에 대한 거리낌’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수계식에서 수계희망자는‘∼하는 행동으로부터 떠나겠습니다’라고 맹세하며, 이후 불교도로서 부끄럽지 않은 올바른 심신을 유지해 나갈 것을 자발적으로 약속하게 되는데, 이 약속은 수계식이 끝난 후에도‘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수계자에게 남게 된다. 그리고 이후 그가 더 이상 악행을 일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근본적인 힘이 되어 준다. 수계식이라는 공식적인 의식을 통해 불법승 삼보를 마주하고 한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점이 아마도 수계 후까지 그 사람의 마음에 남아 영향을 주게 되는, 일종의 심리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체는 수계식 이후 본인의 의지 여하에 따라 더 강해질 수도 또는 약해질 수도 있지만, 일단 계체 획득의 계기를 마련하여 불교도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게 해 준다는 점에서 수계식의 의미는 중대하다. 아무리 좋은 행동이라도 굳건한 결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시작하기도 힘들고 지속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만약 수계식을 받았는데도 악행에 대한 꺼림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의 수계가 그 순간만이라도 진지한 결의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불자로서의 올바른 행동을 통해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자 하는 절실한 의지에 근거한 수계식이 아니라면, 진정한 계체의 획득은 기대하기 힘들다.

자칭 불교신자라고 하면서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거, 받고 난 후 마음만 불편하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수계식을 꺼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수계식의 목적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자각하고 이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일으킬 줄 아는 계체를 심어 주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이 불편한 마음이야말로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을 즐기게 해 줄 하나의 훌륭한 씨앗이기 때문이다.
 
도쿄대 외국인 특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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