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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관한 키케로의 조언

기자명 법보신문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키케로 지음·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고대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기원전 106~43년)가 혀를 차며 말합니다. 바로 “자기가 얼마나 많은 염소와 양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자기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갖고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친구로 삼을 수야 있겠습니까? 키케로는 그의 길지 않은 ‘우정론’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가축 떼를 마련할 때는 조심하면서도 친구를 고를 때에는 왜 조심하지 않는가.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아, 갑자기 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내게는 참 좋은 친구가 한 사람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처님입니다.

‘감히 부처님을 자기 친구라고 하다니 너무 건방진 거 아니냐?’라고 따진다 해도 나는 이 생각을 거둘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난다여, 좋은 친구, 좋은 동료와 사귀는 것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 같다고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세존을 좋은 벗으로 삼아서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상윳타 니카야)

중생더러 당신을 벗으로 삼으라니 부처님은 참 대자대비하기도 하십니다.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한다’고들 말하지만 이 말에는 완성된 자와 아직 미망에 허덕이는 딱한 이가 뚜렷하게 갈라집니다. 위아래의 차별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자비에는 그런 구별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비심이라고 할 때의 ‘자(慈)’는 산스크리트어로 메타(metta)인데, 이 말은 우정을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나온 말입니다. 부처님이 나를 벗으로 대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부처님과 내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정은 두 사람을 동등하게 만들어줍니다.
“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동등해지는 것이네. 누군가 미덕과 재능과 행운에서 우월하다면 그것을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공유해야 하네. 윗사람은 자신을 친구의 수준으로 낮춰야 할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인 친구를 어떻게든 자기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네.”

키케로의 이 말을 보자면 우정이란 사람을 정신적으로 한없이 고양시켜주고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덕목입니다.

부처님이 내게 쏟는 그 우정 어린 마음을 잘 헤아려 이번에는 내가 내 이웃에게 그런 마음을 전해보려 합니다. 나는 누군가의 또 진실한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키케로는 이렇게 신신당부합니다.

“다만 자네가 줄 수 있는 만큼, 자네가 도와주려는 친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게나. 그리고 우정이 지나쳐 중대사를 앞둔 친구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진대 아마 내게도 깊은 오해와 갈등으로 오랜 친구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키케로의 이 말을 떠올리며 좋은 벗을 떠나보낼 것입니다.

“우정의 솔기는 확 찢어내기 보다는 한 땀 한 땀 따는 것이 더 낫다네. 우정이 억지로 꺼진 것이 아니라 다 타버린 것 같은 인상을 주어야 하네. 그러나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우정이 심각한 적대관계로 바뀌지 않게 하는 것일세.”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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