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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의 장인]③ 불화장 김 의 식

기자명 법보신문

뱃사공 아들 ‘화엄의 강’서 노 저으며‘석채불화’ 세계 구축

호롱불 아래서
만화 스승삼아 그림공부

종교미술 입문 가능성에
볼펜 두 자루 들고 상경

주남-송곡 문하서 정진
불미대전서 대상 수상

불교미술→전통미술 위해
필법-색채-문양연구 박차

<사진설명>김의식 불화장이 붓 끝에 신심을 모아 보경사 탱화를 조성하고 있다.

깨달음도 일대사 인연을 만나야 몰록 찾아온다고 했다. 화두일념을 통한 인고의 용맹정진 세월을 보냈을 때 ‘깨달음의 인연’이 닿을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법성(法性) 김의식. 그의 불화 인연도 그렇게 찾아왔다.

‘무속화’를 공부 하면 어릴 적 산사에서 보았던 여법한 불화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붓을 잡았던 그는 19살, 친구가 가져 온 불화 도록 한 권을 보고 새로운 눈을 뜬다.

“충격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벅차게 뛰고 있었습니다. 이게 불화구나!”

1959년 경북 성주 선남면 노석리에서 태어 난 그는 그윽한 산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유년의 세월을 보냈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이지만 실상 그의 생활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땅 한 평 없었던 그의 부친은 나룻배를 저으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고 불심 깊었던 어머니는 노석동 마애불을 찾아 불공을 드리곤 했는데 워낙 형편이 어려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아래서 글을 읽어야만 했던 당시의 일상은 60년대 초반 가난한 뱃사공의 현실 그대로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은 생계를 위해 대구로 이사했고 이곳에서도 서 너 번의 이사를 거듭하며 삶의 인고를 견뎌야 했다. 유년 시절 때 동심에 젖어 만화를 보았던 우리들이지만 그에 있어 만화는 스승(?)이었다.

“그림 그리겠다는 마음은 간절했는데 배워볼 길이 없었습니다. 누구를 찾아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림 배울 학비도 없었습니다. 그저 저 혼자 만화라도 보며 습작해 보는 방법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중 한 친구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종교미술’을 배워 볼 의향이 없냐는 것.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울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그는 친구의 편지 한 통에 볼펜 두 자루 들고 서울역으로 향했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 온 그는 1975년 광명 조인행 선생 제자로 들어가 난생 처음으로 종교미술을 접했다. 언뜻 보기에도 ‘부처님’이나 ‘보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교미술이라고 하니 이 곳에서 열심히 수학하면 자신도 사부대중이 예를 올리는 불화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속에 그림에만 몰두 했다.

그런 그의 시선 앞에 놓인 불화도록. 책장을 여는 순간 ‘석가모니’, ‘관음’,‘지장’, ‘문수’, ‘보현’이 나퉜다. 순간 앞뒤가 탁 막히며 거센 파도와 같은 감동이 밀려 들어왔다.

“아, 이게 불화구나!”

그 때부터 그는 수행승이 해제철을 맞아 만행길에 오르듯 불화를 찾아 전국의 산사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던 중 1978년 서울 성북동 전통불교미술을 작업하고 있던 주남 박동수 선생을 만나 2년 동안 본격적인 불화 수업을 받았다.

<사진설명>열반도 부분도.

“밑그림(초)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회응 상균의 맏제자이셨던 박동수 선생님은 옛 불모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해 주셨는데 불화가 단순한 그림에서 벗어나 예배 대상인 성보라는 점을 깊이 일깨워주셨습니다.”

회응상균은 우리 불화사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인물이다. 조선시대 3대 화승 중 한 사람인 금호약효의 수제자가 보응문성이며 그의 제자가 바로 금용일섭, 회응상균이다. 따라서 박동수 선생은 회응상균의 직계 재가제자라 할 수 있다. 박동수 선생 문하에서 2년 동안 도제 수업을 받은 그는 군에 입대하며 잠시 붓을 놓게 된다.

1983년 군 제대 후 가족 부양까지 떠 안아야 했던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불화작가로서의 길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때 동강 김익홍 선생을 만나며 불교미술을 보는 시각을 좀 더 향상시켰다고 한다.

<사진설명>관경 16관 변상도 부분도.

“선생님은 불화를 조성하는데 있어 기초와 이론은 중시하셨는데 과거 문화유산도 중요하지만 오늘 이 시대의 전통불교미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견도 들려주셨습니다.”

불화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1990년 제13회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로 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1993년 한국문화재 보호재단이 주관하는 제18회 대한민국 전승공예 부문에서 전통불화로 최고상을 수상한다.

또한 1995년 문화재 관리국이 시행하는 문화재수리기술자 시험에도 합격하며 같은 해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제1회 김의식 불교미술전’을 열어 보이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세상에 펼쳐 보였다.

1996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미술과정을 수료할 즈음 그는 송곡 조정우 문하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세계를 가다듬는다. 송곡 조정우 선생은 금용일섭 스님의 직계 재가제자다. 회응상균의 제자 박동수 선생과, 금용일섭의 제자 조정우 문하에서 공부한 그는 회응상균, 금용일섭의 스승인 보응문성의 맥에 닿아 있는 셈이다.

그의 불화 특성을 한 가지 꼽으라면 아마도 ‘화사함’일 것이다. 옷 주름선 하나도 확연히 보이는 것은 선에 포인트를 주어서기 보다 선을 중심으로 한 양쪽의 배색이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밝고 화사함을 선사한다. 그의 이러한 기법은 물감이 아닌 석채만을 사용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진설명>수월관음도.

사실 모든 작품을 석채로만 사용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감에 비해 워낙 비싼 석채 값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석채를 이용한 필법이 그리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석채는 한 두 번의 붓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서 너 번의 붓질이 더해져야 하는데 석채 기법에 통달하지 않고는 얼룩이 지고 만다. 따라서 깔끔한 붓질과 색의 농도가 작품 전체의 품격을 가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왜 이렇듯 어려운 석채기법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 산사에서 보고 있는 불화는 탁하면서도 은은합니다. 왜 은은하게 보일까요? 처음 탱화를 그리는 사람이 지금 보고 있는 색을 사용해 은은하게 보인 것이냐 하면 아니거든요. 처음 그림은 화사했습니다. 그 화사한 그림에 300년, 500년의 세월이 묻어 은은함이 배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중국 명대 법화사 벽화(1443년)다. 화면 중앙과 상단은 약간 어두우면서도 보살들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그러나 하단 화면은 상반된 색채다. 즉, 밝고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알고 보니 그림 하단 앞에는 긴 탁자가 있었는데 그 탁자가 세월의 먼지를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즉, 처음 그림은 화단 하단의 색감처럼 밝고 화사했던 것이다.

<사진설명>얼룩하나 없는 상호 금칠이 놀랍기만 하다.

그는 지금도 새로운 필법 연구와 색감, 그리고 문양 연구에 한창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리고 현대 불화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를 명철하게 꿰뚫으며 자신의 불화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

“불교미술은 단순히 사찰의 장식품이 아니라 우리 민족 삶의 일부로써, 그리고 민족의 정서와 오랜 기간 함께 한 전통미술이라는 역사성에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분야”라며 “불교미술은 종교미술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좀 더 개방된 사고와 인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진설명>화사함이 돋보이는 색감은 그의 통달한 색채기법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개방성’이 전통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전통미술이라는 역사성과 탱화에 대한 종교적 편견으로 인해 기본적인 방향마저 무시되고, 기법상의 혼란과 함께 전체적인 흐름을 왜곡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속에서 불교미술의 울타리를 벗어나 전통미술로써 자리매김 시키기 위한 그의 일련의 작업은 아마도 금호약효, 보응문성, 금용일섭 당대 내로라 했던 대화승들의 뜻과도 맥을 같이할 것이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탱화/김의식 지음/운주사
불화특징-표현기법 소개
탱화 대중화 원력 담아

30여년 동안 불화 작업에 매진해 온 법성 김의식은 2005년 『탱화』를 출간한 바 있다.

단청의 종류와 기법, 고려, 조선불화의 특징은 물론, 영산회상도, 팔상도, 삼신불회도, 감로탱화 등 탱화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뿐만 아니라 사찰에서 쓰이는 다양한 문양과 함께 ‘탱화 그리기’를 통해 출초부터 배접, 도채, 바림, 금박 붙이기 등의 세세한 기법까지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세간에 선보인 것은 불교미술의 대중화 즉, 불자는 물론 일반들이 불화와 더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의 서문 한 토막을 보자.

“불교미술이 작품성을 떠나 일반인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하며 감상하는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도상이나 기법, 색상의 변화에 있어 각자 개인의 역량 이전에 ‘우리미술’이라는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가 있을 때 ‘함께 느끼는 불교미술’이 가능할 것이다.”

‘전통미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그는 ‘불화’란 우리의 뿌리이며 혼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의 표현으로서, 장구한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곁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우리의 민족의식이 표현된 미술이라는 메시지를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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