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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돈은 물 흐르듯 유통된다

기자명 법보신문

화폐에 대한 대각국사의 안목 탁월
업적 재평가와 스님상 화폐 고려를

오늘은 좀 색다른 이야기를 해 보도로 하자. 요사이 나라 안에 지폐를 교환하여 유통시키는 일이 있었는데 지폐의 도안에 말성의 소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에서 화폐의 이론에 소상했던 역사적 인물 한 분이 연상되어 살펴보려 한다.

고려 때의 큰 스님이신 대각국사 의천이 화폐에 대한 이론은 참으로 놀랍다는 것을 이 기회에 또다시 생각하게 한다.

의천의 문집인 『대각국사문집』이 전하고는 있지만, 중간에 결장된 부분이 많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문집 안에 한 편의 글이 화폐의 제정에 대해 논한 것이 있어 눈길을 끈다. 오늘 날로 말하면 경제학자도 아닌 승려라는 신분으로 화폐에 대해 그렇듯 해박한 안목을 가졌다는 점이 당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 이론은 단순한 이론을 넘어선 국민 대중을 위한 산 실천의 학문이었다는 점이 오늘의 학자라 해야 할 우리들에게 크나 큰 경종을 울린다 하겠다.

국사의 이 글은 낙장된 일부분이기 때문에 제목도 알 수가 없으나, 전편이 화폐에 대한 내용이다. 남은 부분만 살펴보면 돈[錢]에 대한 역사적 내력을 소상히 살폈으니 우선 논리의 원전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 시대에 자장율사가 선진 문물의 제도를 가져다 우리의 국가 제도를 정비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본조(고려)에 들어와 모든 제도가 새로워지는데, 어째서 돈을 제정하는 법[立錢之法]에 언급이 없느냐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면서 돈의 이론을 정립하고 있다.

대체로 돈이 근본[體]은 하나인데 뜻[義]은 넷이다. 1, 전(錢)이라 함은 바탕은 둥근데[圓 ] 구멍은 모지다[方]. 이는 원이 하늘을 상징하고 방이 땅을 상징해서 하늘과 땅은 굴러서 마지 않는 것이고, 2, 천(泉)이라 함은 유통하여 흐르는 것이 마치 샘물이 무궁한 것과 같고, 3, 포(布)라 하는 것은 민간에게 유포하되 위아래 계층에 두루하여 영원히 막히지 않음이다. 4, 도(刀)라 함은 칼날 같은 날카로움[利]이 빈부를 아름다이 나누어 날마다 사용해도 무디어지지 않음이다. (여기에서 돈의 유통을 이익이라 하여 ‘날카로운 利’자를 쓰고 있음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어서 돈을 제정하여 유통시키면 다섯 가지의 편리함이 있으니, 1, 쌀로 화폐를 삼으면 물물교환에서 운반의 어려움이 있으니 백성들에게 등짐의 괴로움을 덜어준다. 2, 물물교환에는 무게를 속이는 일이 있지만 돈으로 유통시키면 이러한 속이는 간계가 없이 어려운 백성을 구제할 수 있다. 3, 국가 봉급에 균등한 등급을 쉽게 할 수 있어 권력을 막고 청렴한 자를 우대하게 된다. 4, 수해나 화재 같은 재앙에도 보관이 편리하다. 다섯 째의 이점은 책이 결장이 되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진술하고는 그 말미의 각오가 대단하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극히 현명하신 독단으로 과감히 실행하시면 비단 국가의 복일 뿐만 아니라 만세 창생의 복입니다. 혹시 조정에세 이의가 있으면 소신의 논의로 공경대부에게 보이시어 합당하거나 부당하거나 옳거나 그르거나를 논의하십시오. 조정의 직위가 없는 자가 정사를 말하는 것은 유가에서도 허락하지 않는 바이지만 신은 어버이를 임금으로 모신 처지에 잠잠히 지낼 수가 없습니다.” 한다.

스님으로 국사라는 신분을 십분 이행하려는 결연한 자세였음도 아울러 살필 수 있어 당시 지식인의 사명감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화폐의 도안에 시시비비가 있는 것 같은 차제에 화폐의 역사적 평가도 겸해 대각국사 의천의 초상을 도안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조심스러운 제안도 겸하여 술회한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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