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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친정을 벗어나다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오강남 지음 / 현암사

결혼한 뒤 나는 참으로 엉뚱한 ‘문화충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댁의 모든 식구들이 시어머님의 음식이 지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자랑하며 내게도 은근히 동의를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식에 관한 한 일가견을 이룬 친정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 30년 가까이 살아온 내가 전혀 다른 음식을 맛보면서 하루아침에 ‘우리 시어머님 음식이 제일 맛있다’라며 동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처음 몇 해 동안 나는 심한 거부감에 시달렸습니다. 나물 데치는 법, 칼질 하는 법, 양념 순서, 접시에 담는 법…. 이 모든 것이 내가 보고 자랐던 것과 너무나 달랐기에 나는 시댁의 부엌에 들어가는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시댁에서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고 난 뒤에는 친정으로 가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의 음식을 먹으며 내 자신을 달래었습니다. ‘역시, 음식은 이래야만 하는 거야.’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내오다 보니 차츰 두 어머니의 음식이 똑같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세상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음식이 더 몸에 맞는 사람도 있고, 살다보면 낯선 음식을 먹기도 해야 하며, 그 음식의 어떤 것은 내 어머니의 음식 보다 훨씬 더 맛나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내 앞 마당(親庭)’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라는 세계 속에서 살아온 내게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있는 비교종교학자의 ‘불교학개론’은 낯섦과 설렘 그 자체였습니다. 두 어머니의 음식을 동시에 맛보며 ‘친정’이라는 우물을 벗어나야 했던 그 새댁이 이번에는 ‘오직 불교’라는 틀을 조금 헐고 바깥세상을 아주 짧게나마 둘러보는 여행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에도 불교와 비슷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된 내용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을 했는데, 동방교회에서는 그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하는 기도를 쉬지 말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기도를 하루 3천 번씩 외우다가 6천 번, 만2천 번으로 늘리면 그 후에는 깨어 있든지 잠을 자든지 그 기도가 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이 책, p.223)라는 부분입니다. 염불삼매라든가, 화두를 놓치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매우 흡사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의 이것은 그리스도교식으로 말하면 바로 이것이다’라는 식의 두 종교의 유사성을 말하는 부분을 만나다보니 자꾸만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오래 전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도가(道家)식 용어와 설명으로 불교를 이해하였다던 그 ‘격의불교’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격의불교의 결과, 불교가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개가를 올리기는 하였지만 ‘중국식 불교’가 과연 석가모니의 뜻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라는 후세 사람들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꼭 자기방식으로 끌어들여야만 이해를 하고 수긍을 하는 그런 ‘격의’가 자칫 ‘종교 간의 대화’라는 아름다운 작업의 빛을 바래게 할지도 모릅니다.

다르면 안 될까요?

‘결국은 비슷하니까 싸우지 말라’고 타이르기 보다는 ‘다르지만 함께 살아야 하는’ 숙제를 세상의 종교인들에게 내주는 것이 종교 간의 대화를 더 알차게 이끌어가는 방법은 아닐까 생각하였습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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