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로버트 뉴튼 펙 지음 / 사계절출판사
“우리 아버지 헤븐 펙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돼지 잡는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참 다정다감하셨습니다.”
저자는 책 앞 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13살 로버트에게 온갖 자잘한 인생살이의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울타리 치는 법. 사람들 앞에서 예의를 차리는 법. 사양하는 법. 겸손하나 지혜롭게 거래하는 법. 돼지우리를 만드는 법. 우유가 빨리 쉬어버리는 이치를 깨닫는 법. 쓸모가 없는 것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떠나보내야 한다는 법. 그리고 늙은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어머니와 이모를 지켜줘야 한다는 법….
로버트에게는 암퇘지 ‘핑키’가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핑키가 새끼를 낳지 못하자 가난한 집안 살림에 더는 키울 수가 없었습니다.
핑키를 도살하던 날.
핑키를 붙잡아야 했던 사람은 바로 로버트였고, 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빠르고 날렵하게 핑키의 몸통을 갈랐습니다.
“아, 아빠,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소리치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단다. 하지만 네가 어른스럽게 받아들이니 고맙구나. 어른이 되려면 이런 건 이겨내야 해.”
사랑하는 핑키의 피로 범벅이 된 아버지의 손을 잡아서 입을 맞추던 로버트는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습니다.
그 이듬해 아버지는 헛간에서 자다가 세상을 떠났고, 장례가 있던 날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었습니다. 로버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아이에서 어른으로 뚜벅뚜벅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옵니다. 그는 늙은 아버지가 보냈던 일상을 아주 똑같이 근엄하게 치루며 세상의 그 거칠고 고된 바다로 항해를 시작해나갑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한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소년의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몇 번이나 되짚어 따라다닌 뒤에야 비로소 제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무지하고 가난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선물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빠, 나는 노을이 너무나 좋아요. 아빠는 어때요?”
“하늘은 바라보기에 참 좋은 곳이야. 그리고 돌아가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
아버지는 소년과 고된 노동을 하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볼펜을 들고 부지런히 밑줄을 긋던 내 손이 멈추어 버렸습니다. 그곳에는 소년의 이런 회상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아빠는 나무가 사람을 세 번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무를 자를 때와 나무를 운반할 때, 그리고 그것을 태울 때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