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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째 이웃 위해 사경하는 안 준 희 씨

기자명 법보신문
  • 정진
  • 입력 2007.03.05 11:09
  • 댓글 0

“새벽에 쓴 경구 세상을 밝혀갑니다”

<사진설명>타인을 위해 사경기도 한지도 벌써 20년. 매일 새벽과 잠들기 전 일과처럼 정진해 완성한 사경집이 몇 권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 어느 해보다 일찍 찾아온 봄 햇살이 따사로운 3월 초. 높은 건물들로 즐비한 서울 도심 속에서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기엔 아직 이른데 어디선가 향긋한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코를 간질인다. 눈길을 돌리니 서울시의회(옛 국회의사당) 옆 화단에 노랑·분홍·빨강의 빛을 띤 꽃이 가지런히 심어져있다. 과연 누구의 손길일까. 서울시의회 주변는 싱그러운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서울시의회 공보실에서 근무하는 안준희(원만심·48) 씨. 단정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빈틈없어 보이는 외모에서 풍기는 첫 인상은 전형적인 ‘서울깍쟁이’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는 충남 당진 출신으로 시골 농부의 딸답게 품성과 행실이 더 없이 순박한 사람이다.

새벽과 잠들기 전 사경 생활화

자신의 업무도 아닌 도시미관을 해치는 각종 불법광고물을 직접 수거한 분량이 무려 3톤이 넘어 중앙일간지와 TV 등에 소개 된 바 있고 올 2월에는 아동복지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 남모르게 고아원을 돕는가 하면, 장애인 돕기, 재소자 교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친 지도 20여년이 됐다. 서울시의회 건물 미니화단에 계절마다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심고 가꾸는 일도 16년 째 그녀가 꼭 챙기는 일 중 하나. 회색 도시에 피어나는 봄 향기는 바로 오가는 무명인에 건네는 그녀의 봄 선물인 것이다.

손으로 꼽기도 힘들만큼 좋은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안 씨이기에 그는 서울시에서도 꽤 유명한 공무원으로 통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모르는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그것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경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시작했어요. 지금은 가족이나 재소자, 직장동료들이 우환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제 일처럼  그분들을 위해 정성을 담아 한 자 한 자 쓴 것이죠.” 그렇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경기도 한지도 벌써 20여년. 매일 새벽과 잠들기 전 일과처럼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완성한 사경집이 몇 권인지도 모를 정도다.

“불교용품점에서 판매하는 사경집을 사서 써내려가죠. 먼저 사경을 하기 전 첫 장에다 ‘저의 가족 누구, 또는 저와 함께 근무하는 누구가 힘든 일을 겪고 있습니다. 부디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발원합니다’라고 발원문을 써요. 간절한 마음으로 다 쓴 사경집을 전해주면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 고맙다’며 눈물까지 흘리는 분도 있어 오히려 저의 기도정성이 부족하지는 않았나 송구스런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안 씨는 어려움에 처한 이가 설사 다른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그런 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순정한 그의 기도가 전달된 것일까. 신기하게도 그가 누군가를 위해 사경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나빴던 건강도 좋아지고 일도 잘 풀리는 사경의 효험(?)을 여러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사경에 관심을 보여 사경을 접한 이도 한 두 명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한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죠. 그렇지만 그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또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고아원·장애인·재소자 돕기도

안 씨는 7년 전 동산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일반적인 붓글씨 사경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사경 방법을 착안했다. 일반 사경책에 베껴 쓰는 게 아닌 특수 제작된 한지노트(병풍식)에 직접 글자와 무늬를 도안해 ‘관세음보살’과 ‘나무아미타불’을 사경하는 것이다. 직접 도안한 글자, 무늬, 풍경 등에 0.3㎜ 컬러 수성펜으로 법문을 메워가는 방식이다.

완성된 사경집의 크기는 일반 책 사이즈에서부터 대형작에 이르러 하나의 ‘예술’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친구를 위해 사경했다며 펼쳐 보이는 작품에서는 한눈에 봐도 그의 정성과 오래된 사경연륜이 그대로 묻어난다.

‘혹시 글자를 틀리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오히려 왜 틀리냐고 반문하는 그녀. 그만큼 사경할 때 마음을 집중하고 정성을 쏟으면 틀릴 일이 없다는 것이다.

“포교가 따로 있나요? 어느 종교든지 실천이 따르지 않는 신앙생활은 어둠 속에서 거울과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실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범적으로 행하며 열심히 공덕을 짓다보면 자연스럽게 ‘아, 저 사람이 절에 다니던데, 나도 한번 절에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짜 포교라고 생각해요.”
 
안문옥 기자 moono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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