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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의 詩로 읽는 불교]1. 욕망- 김수영의 ‘성’

기자명 법보신문

자본에 뒤틀린 사랑…욕망은 신기루일 뿐

<사진설명>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안방을 점령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MBC 드라마 '나쁜여자 착한여자' 자료사진.

지금 대한민국은 ‘바람난 공화국’이다. ‘묻지마 관광’에 ‘원 나잇 스탠드’가 유행이고 저녁은 물론 아침 드라마까지 불륜 일색이다. ‘유교국가’라는 명성은 이미 사라지고 대다수 사람들이 ‘아름다운 불륜’을 꿈꾼다. 성욕만이 아니다. 모두가 더 너른 아파트, 더 높은 지위, 더 강한 권력, 더 많은 연봉을 열망한다.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할 정도로 도처에 욕망이 들끓고 있고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독재정권과 억압하는 세력에 맞서 끊임없이 자유를 노래한 시인 김수영도 이에 대해 한 수 읊었다.

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아니 그 첫날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여편네는 만족하지 않는다//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모양이다//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다시 돌아간다/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한 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김수영 ‘성’ 전문)

성-소외에 대한 비판-풍자

시 속의 화자는 불륜을 행하고 와서 아내와 섹스를 한다. 불륜을 속이고자 아내와 더 적극적으로 섹스를 행하지만 아내는 절정에 이르지 못한다. 그의 아내가 화자의 불륜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화자가 자신과의 사랑 행위를 대상화하여 구경하듯 행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그런 자신과 아내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사정의 순간까지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애써 노력을 한다.

“당대의 삶과 정신에 대한 위대한 파수병”이란 별호가 따라다니는 시인이 왜 이런 시를 썼을까? 흔히 이 시를 놓고 김수영의 당시 시풍, 또는 시세계와 이질적인 시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 시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자본주의가 왜곡한 성과 소외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풍자임을 알 수 있다.

섹스는 두 사람이 사랑을 바탕으로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을 하나로 결합하여 양자의 합일과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행위이다. 하지만 화자는 바깥 여자하고는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 젖히며 하면서도 아내와는 그러지 못한다. 한 마디로 말하여 바깥여자는 섹시한데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하리라. 성인군자라도 이효리처럼 섹시한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냐고.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섹시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기준이라는 것이 매스미디어와 대중문화가 만들어놓은 허상이 아닌가. 조선도의 미인도나 고대 시대의 미인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백보 양보하여 이효리처럼 생긴 여인이 전통적인 기준에서 보아도 빼어난 미인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왜 사랑이 없는 섹스를 하려는가.

자본주의는 지구촌을 거대한 쇼핑센터로 만들었다. 작년에 100을 생산한 기업은 올해 110 정도는 생산하여야 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는 확대재생산의 메커니즘이다. 더 많이 욕망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만 이 체제는 존속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를 비롯하여 학교에 이르기까지 이 체제를 지탱하는 모든 것들이 법과 윤리, 도덕의 규제는 풀어버릴 대로 풀어버리고 욕망을 부추긴다. “왜 30평에 만족하는 거야? 투기라도 해서 40평으로 넓혀 가. 왜 망설이는 거야? 몸을 팔아서라도 명품을 걸치는 것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의 선택이야.”

게다가 초등학생조차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할 정도로 접촉은 쉬워졌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 윤리를 지키는 자가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소수’가 되었다.

이 시에는 ‘아내’와 ‘그년’, 다시 말해 전통적 자아·사랑 대 자본주의적 자아·사랑, 이성과 감성의 이항대립이 내재한다. ‘그년’은 몸이 자본이자 상품인 여성이다. 반면에 아내는 몸이 살림과 사랑의 바탕인 여성이다. ‘그년’은 ‘젊음, 곧게 쭉 뻗은 다리, 가는 허리와 탱탱한 가슴’ 등 자본주의의 욕망에 부합하는 몸을 가졌으리라. 반면에 아내는 이 기준으로 보면 이제 성적 매력을 상실한 조선 여자이다. 전통적 자아와 이성의 눈으로 보면 시적 화자는 아내의 몸을 보듬어야 하고 아내의 몸에서 성욕을 느끼고 아내와 한데 어우러진 성행위를 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자아와 감성으로 느끼면 이와 반대다. 두 자아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서 화자가 우선 미봉책으로 선택한 것이 ‘기만’이다.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를 “어지간히 다부지게” 사랑하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아내만 속아준다면 두 자아는 만족할 것이다.

시대 허상 속에서 ‘허우적’

기만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양자는 계속 갈등한다. 전통적 자아는 아내가 속아주지 않는다고 자본주의적 자아를 나무란다. 양자는 아내를 더욱 속이는 행위로 타협한다. 그리고 행위를 마치고 나서 화자는 아내를 기만한 행위에, 기만하는 것으로 타협하는 삶, 자칫하면 자신마저 기만할지도 모르는 이 자본주의의 일상에 더욱 두려움을 느낀다. 아내를 기만하는 것은 아내를 소외시키는 것이며, 자신을 기만하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결국 화자 또한 “정직하였으며 아내에게서 매력을 느끼며 아내를 사랑하였던”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소외된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은 어느덧 부부의 잠자리까지 파고든 것이다. 이것을 섬뜩하게 깨닫고 난 뒤의 진술이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이다. 이처럼 우리는 욕망하면 할수록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계속〉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근현대 명시 통해 현대적 불교 접근”
필자 한양대 이 도 흠 교수

“시는 사물에 담긴 진리를 대번에 깨달아 이를 압축된 형식으로 전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그러기에 한 편의 시가 바로 공안이 될 수 있습니다.”

시를 통해 불교철학의 핵심 사상들에 접근해 가고자 새롭게 기획된 연재 ‘시로 읽는 불교’의 필자 이도흠〈사진〉 교수는 시를 통한 불교로의 접근 방법에 대해 “시는 선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부수고 또 부수어 진여 실체에 다다르려 한다”고 설명했다.

“시를 통해 욕망, 연기 등 불교 철학의 핵심 개념들을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정감 넘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연재의 목표”라는 이 교수는 “불교적 개념의 핵심과 통하면서도, 쉽고 읽을수록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시를 고르고자 한다”며 “21세기 오늘날 삶의 맥락에서 불교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현재성, 현실성을 갖는 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시의 해석에 정답은 없다”며 “활자로 드러낸 글은 그 시가 담고 있는 의미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독자들의 마음”이라고 당부했다.

이 교수는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겸 한양대 한국학연구소소장이며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 다수의 저서와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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