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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마 좌복 위에서 죽으뿔랍니더”

기자명 법보신문
  • 선정
  • 입력 2007.03.1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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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참선공부 한 분 순 보살

안거마다 결제…매일 10시간 정진
칠순에 49일간 안자며 철야정진도

<사진설명>한분순 보살은 70년대 말부터 매년 안거에 동참해 용맹정진하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 좋은 공부할 수 있다는기 얼마나 큰 복임니껴. 이번 생에 못 깨달으면 다음 생에서라도 꼭 깨달아야 되지 않겠니껴. 얼매나 더 살라나 모르겄지만 내사마 좌복 위에서 죽으뿔랍니더.”

올해로 77세가 되는 불심행 한분순(서울 신림동) 보살. 여느 노인 같으면 거동도 쉽지 않고 손자들의 재롱이나 볼 나이건만 한 보살의 구도의지는 어떤 수행자 못지않다. 70년대 말 인천 용화선원 조실 전강 스님 지도로 참선 공부를 시작한 한 보살은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사찰 안거에 동참해 용맹정진하고 있다. 또 해제 기간에도 두 달간 다시 정진하는 것을 포함하면 매년 10개월 이상 결제를 하는 셈이다. 특히 지난 1999년에는 69세의 나이로 출가 수행자들도 어렵다는 49일 철야정진을 거뜬히 해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처음 매칠은 허리가 몽땅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심니더. 코피도 줄줄 흐르고 무엇보다 잠 안자는 게 그리 고통스러운 줄 몰랐니더. 그래도 여기서 죽으뿔자는 각오로 밀어붙인기라. 그렇게 21일쯤 지내다보니 그제야 힘이 붙더라꼬요. 49일 정진하고 나이 공부가 뭔지 쪼매 알 거 같디더.”

전강 조실 스님을 비롯해 청담, 서옹, 혜암, 송담, 진제, 혜국 스님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사들로부터 공부 잘한다고 칭찬받아왔던 한 보살. 현재 충주 석종사 재가선방의 입승 소임을 맡고 있는 한 보살이 참선의 길로 접어든 것은 그의 지난했던 삶과 무관하지 않다.

1950년, 한 보살의 나이 불과 열아홉 살 때였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터진 한국전쟁은 그녀의 삶을 절망의 밑바닥으로 밀어 넣었다. 임신 6개월 상태에서 당시 안동사범학교 교사였던 남편이 전쟁 통에 운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 살아야 할 어떠한 이유조차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안 어른들의 도움으로 29세에 상경한 그는 말 그대로 아이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야 했다. 외로움과 힘겨움에 눈물도 하얗게 지새우는 밤도 머리털처럼 숱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눈물겨워 한 보살은 아이를 붙잡고 “한강에 가서 같이 죽자”고까지 했다. 그러나 아이는 “지금 죽기 싫다”며 “내가 스무 살이 돼서 어머니 맘대로 하라”고 당차게 거부했다.

‘이 아이가 무슨 잘못이랴.’ 한 보살은 죽겠다는 각오로 다시 억척스럽게 살았고,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불교의 세계에 젖어 들어갔다. 특히 뒤늦게 만난 참선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49세 되던 해 한 보살은 바랑을 꾸려 집을 나섰다. 하나 있는 아들의 결혼까지 지켜봤으니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이 없어진 까닭이다.

인천 용화선원에서 13년간 정진한 한 보살은 이후 제방의 눈 밝은 스승을 찾아다니며 도를 구했다. 게송 하나를 듣기 위해 설산에서 몸을 던졌다던 동자나 법을 위해 한 팔을 싹둑 잘랐던 혜가 조사의 마음과 다를까. 때론 격려도 호된 질책도 한 보살에게는 영약이었고, 화두에 온 몸을 내던질 수 있는 더없는 자비의 경책이었다.

“내 삶이 억수로 기구한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복된 삶이 또 있을까 싶습니더. 내사마 대통령도 하나 안 부러우니까예. 이게 다 참선공부 덕 아니겠심니껴.”

“여러 대중 속에서, 큰 시님 밑에서 공부하는 기 참 공부”라며 소녀 같이 화사하게 웃는 한 보살. 그의 청안한 얼굴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 같다던 어느 시인의 국화꽃을 떠올리게 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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