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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고치 속에 갇히는 누에

기자명 법보신문

집을 짓되 집에서 벗어나는 누에 닮아야
지식은 지혜로 전환될 때 참다운 가치

시간의 흐름 속에 마디를 정해 놓고 스스로 희비에 엇갈리는 것이 사람살이가 아닌가. 한 해라는 마디를 정해 놓고 새 해가 되었다고 좋아하는가 하면, 좋아하는 시간의 몇 분 전을 섣달그믐이라 하여 아쉬워했다. 그런 아쉬움과 희망을 겪은 지 엊그제인데, 봄이 왔다 하여 여러 가지 절차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배움이라는 일상적 행위에도 어떤 제도적 마디를 정해 놓고, 졸업이다 입학이다 하여 분주한 요즘이다. 배움의 제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입학이라 하여 축하하고, 그 제도를 마치고 나오는 것을 졸업이라 하여 또 경하한다. 그렇다면 입학과 졸업이라는 제도적 시간 거리에서 얼마만큼 성숙되어 경하를 받는 것일까. 과연 성숙되어진 것인가, 제도적 배움 속에 속박되어 나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하는 굴레를 하나 더 늘려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배움의 장에서 가끔 누에의 일생을 생각해 본다. 좁쌀만한 알에서 부화하여 먼지 같던 유충이 그 단단한 뽕잎을 먹으며 자라가니 신기하기도 하다. 자라는 과정 또한 기계적이다. 일정한 기간을 두어 먹이를 쉬다가, 다시 먹기 시작하는 과정을 3번 반복한다. 이를 일러 누에가 잠잔다 한다. 누에는 석잠을 자야 성장이 완수된다.

이 석잠을 지나는 과정이 재미 있다. 뽕잎의 고체를 먹어가며 자라는데 먹을수록 몸뚱이는 점점 액체처럼 투명해 진다. 다 자라 집을 지을 때가 되면 전신이 맑아서 투명해진다. 집을 지을 잠박(蠶箔)으로 옮기려면 등불에 비추어 투명한 놈을 올린다.

배움도 이와 같아야 한다. 배움은 지혜의 축적이니, 지혜가 늘어갈수록 누에처럼 몸이 맑아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맑아져야 한다. 제도적 배움의 기간, 초 중 대학이라는 3단계도 누에로 비유하면 석잠의 휴식을 지나는 셈이다. 이 석잠을 지나 완숙된 인격체가 되었다면 누에처럼 투명한 맑은 몸이 되어야 하고, 누에의 고치처럼 독립된 ‘나’로서의 집을 지어야 한다.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본분종사(本分宗師)의 작가(作家)까지는 못 되어도 그런 작가적 정신은 있어야 할 것이다.

누에는 자신의 집을 찾아 지어 놓고 그 안에 갇히나, 사람은 이와 달리 집을 지음[作家]이 얽매임의 집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내 집인 무한 공간의 집을 짓는 자유의 집이다. 제도적 배움의 틀 속에서 자라지만, 이 제도를 마치는 순간에는 어떠한 틀에도 얽매임이 없는 자유인으로서의 작가로 변신하여야 한다.

누에는 자신이 지어 놓은 집에서 다시 수도의 잠을 자고, 그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환생이라는 대변화인 나비로 탈바꿈까지 하여 다시 제3의 삶을 사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속박의 구속을 벗는 해탈이 아닌가. 사람은 이와 달리 환생의 변화 없이 벗어나는 지혜를 가졌으니, 깨달음의 본분의 집을 짓는 순간, 집의 구속이 아닌 어디에도 집이 될 수 있는 벗어남의 집을 짓는다. 이를 일러 해탈이라 할 것이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학의 기쁨에 들떠 운동장을 가득 메운 신입생을 보면서, 제도권 속에서 틀에 박힌 교육을 받게 되겠지만, 이 틀을 틀로 굴레삼지 말고 보다 더 큰 틀의 변화를 창조하는 지혜가 자라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지식은 지식이 아닌 지혜로 변하여 뽕을 먹고도 맑아지는 누에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맑아진 육체에서 뽑아낸 섬유질이 비단을 낳듯이, 지혜의 머리에서 재창조된 지혜가 인류에게 공급되는 비단옷이 되어, 진(眞) 선(善) 미(美)의 아름다운 몸치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치를 지어 스스로 얽매이는 작견자전(作繭自纏)이 아닌, 집을 짓되 집을 벗어나는 작가자탈(作家自脫)의 지혜를 축적하는 입문으로 삼는 학생의 모습을 기대한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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