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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상승 미덕 살릴 수 없나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07.03.21 14:57
  • 댓글 0

동 명 스님
서울 전등사 주지

 

10대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은사스님 슬하에서 자란 내게 출가 사찰인 내소사는 고향 같은 곳이다.

이제는 부모님보다 더 그리운 은사스님도 안 계시고 함께 어울려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도반들도 남아 있지 않은 그곳이지만 그래도 때마다 내 발길은 그곳을 찾는다. 어른들로부터 챙김을 받던 내가 어느 새 후배들을 챙겨야 하는 나이에 이르고 보니 스승님 품안의 시절은 내 가슴 속 깊은 그리움의 우물이다. 수구초심이라 했나, 여우도 죽을 때는 제 고향 쪽으로 고개를 둔다 했다. 하물며 사람이야….

얼마 전에도 그곳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도 경계를 지나 내소사를 품고 있는 산만 보아도 내 가슴은 뛴다. 본래 마음은 형체가 없으나 마음을 두는 곳은 있으니 항상 마음속으로 그리는 곳이건만 다녀오고 나면 어쩐지 가슴속은 허전해진다. 산세는 변함이 없으나 인심이 달라졌고 습속과 정서가 변한 때문일까.

이번에는 본사 주지선거 바람 때문인지 절 분위기는 더욱 차분하지 않았고 마음 또한 산란함을 면하지 못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세간의 선거 풍속이 승가에도 스며들어 이제는 ‘선거’ 하면 몇몇 좋지 못한 풍경들이 반사적으로 그려진다. 인맥이 형성되어 파벌화 되고, 그에 따른 뒤탈이 따르기도 한다. 예전에 한 보살이 절에 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스님! 그놈의 선거 바람에 참 부산합니다. 어느 쪽에선 밥을 사주고 또 어느 쪽에선 봉투를 주고…, 그렇지만 그게 다 세금 아니겠습니까?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늙은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아는 모양이예요. 그래 이번에 저는 그 사람들 다 찍어 주었답니다. 다들 원대로 되서 잘들 해보라고요.”

“다 찍어주었어요? 허허….”

승가에서도 이와 같은 곤란한 경우가 왕왕 생긴다. 이모저모로 다 안면이 있고 인연이 있는 도반, 선후배들이 저마다 선거에 나서 지지를 부탁하니 이 편을 들 수도 없고 저 편을 들기도 어렵다. 그러자니 그 보살님처럼 다 찍어 주던가, 아예 참여를 않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혹 어느 한쪽을 찍어 주더라도 마음은 개운할 리가 없다.

건전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선거제도의 운영이 필요 불가결하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그만일 듯한데 ‘건전한’이라는 단서가 붙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지탱해 나가더라도 주의를 기울어야 할 함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다수의 횡포’라고 하는 것이며 민주정치의 최대 폐단이 ‘중우정치’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체제에 있어서도 동전의 앞뒤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양면성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언급하고자 한 것은 물론 이런 거창한 주제가 아니다. 단지 근간에 승가에서 채택 시행하는 선거제도에 대하여 살짝 딴지라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대안이 뚜렷하지 않은 막연한 시비라고 하여도 지난 세월에 대한 단순한 향수만은 아니라는 믿음은 있다. 승가의 세간과 다름없는 선거풍토, 세간의 노령화 인구비율 증가와 승가의 고령화 현상, 세간의 핵가족주의와 승가의 개인토굴 조성 유행, 이렇듯 결코 세간과 출세간이 따로 가지 않는다.

거울을 보듯 닮아가는 세간과 출세간의 흐름 속에서 연동(連動)하지 않은 승가의 확립에 도움이 되는 우리만의 전통(傳統)은 없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사자상승제(師資相承制)! 조금 유연하게 해석하면 연륜이 담긴 지혜로운 눈으로 사람을 선택하여 일과 법을 맡기는 제도(制度)라고 풀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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