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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과 천은사

기자명 김호연
  • 수행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평생 처음 찾은 곳에서‘지나친 익숙함’느껴 당황…

천은사는 구례에서 약 9Km 떨어진 지리산의 서남기슭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천은사의 옛 이름은 감로사 즉, 극락보전 앞뜰의 샘이 감로 같다고 하여 지어졌던 이름이다. 그러나 여러 번의 화재와 전란 등으로 인해 샘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여 지금의 이름인 천은사(泉隱寺)로 바뀌게 되었다고 전한다. 서기 828년(신라 흥덕왕 3년) 덕운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후에 도선대사가 875년에 증축, 임진왜란때 소실된 후 1744년(영조 50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은사는 내게 있어 특별한 기억이 있는 사찰이다. 80년대 초반쯤인가 우리는 여러 대의 관광버스를 나누어 타고 겨울 불적답사를 떠났다. 동국대학교 미술과에서는 해마다 방학을 맞으면 2박 또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전국의 사찰과 불교유적지, 문화재와 유물 또는 고승대덕의 행장을 찾아보는 수업 연장의 행사를 가진다. 보통 학교를 출발해서 3일 동안이면 10여 곳의 사찰을 순례하게 되는데, 주로 사찰에서 묵고 공양하며 예불과 강의 등으로 이어지는, 여행보다는 방학특강과도 같은 행사이다.

그 해의 답사는 호남지역의 사찰들이었는데 지리산 쪽의 쌍계사를 시작으로 송광사, 선암사, 화엄사 등의 사찰과 함께 천은사를 가게 되었다. 산 구비를 돌아서며 그리 크지 않은 계곡을 따라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나는 묘한 기분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들이 너무도 낯익은 까닭이었다. 당시에 사찰을 들어서며 가슴이 쿵쿵 뛰는 듯 한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평생 처음 오는 사찰에서 교차하는 낯설음과 너무나 익숙함의 당황스러움에 어느새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경내를 돌며 추억을 회상하는 형색이 되어 있었다. 산세는 물론 건물 모퉁이 뒤의 익숙함이나 평온한 마음은 경내에 깔린 은은한 향내음과 더불어 마치 고향을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었다. 일주문, 수홍문, 극락보전, 팔상전과 진영당, 천성각 그 외에 회승당이나 보제루 등 가람을 배치하고 있는 건물들의 모습들이 무언가가 다르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기억으로 나를 반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시간을 잊고 그렇게 배회하다 일행과 함께 서둘러 천은사를 떠나며 몇 번이나 돌아보고 돌아보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천은사에 대한 의구심은 10년쯤이 흐른 뒤 또 한 번의 계기로 인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다시 천은사를 찾아갔을 때는 10년 전의 그런 기억들이 마치 꿈을 더듬는 것 같았다. 수염을 기른 주지스님의 방에 앉아 녹차 한잔을 마시고 극락보전에서 삼배 후 경내를 돌면서도 어느 곳 하나 오히려 낯익은 곳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낯선 사찰에 처음 든 객처럼 벽화를 둘러보고 서성이다가 무심히 사찰을 빠져 나왔다. 내게 있던 천은사의 기억에 대한 많은 의문들. 그 후 나는 누구에게도 물을 말이 없었다.



김호연(화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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