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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홍위병의 붉은 기억

기자명 법보신문

『붉은 땅의 기억』
장안거 글, 그림 / 홍연미 옮김
문학동네

평소 아버지로부터 꾸중과 매를 많이 맞으며 자라난 마오쩌둥은 손님들 앞에서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반항하고 집을 뛰쳐나갑니다. 아버지가 달려 나와 집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으나 어린 마오는 연못가에 서서 아버지가 다가오면 뛰어들겠다고 저항하였고, 결국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냅니다. 이 사건 이후 굴복하는 것은 압제를 낳을 뿐이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반란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이 책 p.50에서 발췌)

훗날 공산당의 최고지도자가 된 마오쩌둥. 그가 1960년대 중국에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묘한 잔치’를 벌려놓았습니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인 중국 인민들은 수천 년의 압제 속에서 배를 곯고 기를 펴지 못하고 출세의 길이 꽉 막혔고 게다가 글도 배우지 못한 채 억눌려 살아오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뒤바뀐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복종에 길들여져 눈치를 보는 어른들과는 달리 나이 어린 학생들은 새로운 세상을 재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반란은 정당하다.”

어린 학생들은 이렇게 구호를 외치며 수 천 년 동안 차곡하게 쌓여 굳어온 전통과 권위를 깨부수기 시작하였습니다. 광풍에 휩싸인 소년들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최고 권력자의 묵인 아래 파괴를 감행합니다.

이런 회오리바람 속에서 소년 안거의 10대가 펼쳐집니다. 소년은 아버지가 공산당 간부였고 혁명가의 가사까지 지었던 터라 누구보다 홍위병의 가장 앞줄에 설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인이요, 부유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인민재판을 받고, 운전사였던 후 아저씨는 소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다. 아버지와 너희들 사이에 확실한 선을 그어야 해.”

그리고서 아버지의 원고는 압수당하고 골동품은 모조리 깨지고, 서재는 봉인당합니다.

옳았던 것이 순식간에 가장 그릇된 것으로 추락하고, 아름다웠던 것이 가장 추한 것으로 돌변하고, 선하였던 것이 악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멸시받던 자들이 한 순간에 권력을 쥐고 낯선 사람들의 인생을 심판하고 가름하게 되었으며, 절친했던 친구들은 사상 검증을 받고서 죄인이 되거나 혹은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하였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어떻게 해야 달라진 세상에서 행복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가족 보다는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는 것이 더 좋았던 소년은 어떻게든 새롭게 재편된 질서 속에 들어가고자 안달이 났습니다. 간신히 동무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세상은 다시 새로운 다툼 속으로 말려들어갑니다.

판을 벌린 마오쩌둥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당시의 어린 홍위병들은 이제 한 사회의 ‘어른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가치관을 홀랑 뒤집고 모조리 파괴한 뒤에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 몰라 반백의 머리를 긁적이며 문혁 시대를 자꾸 돌아보고 있습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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