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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일과 수행은 둘이 아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숲은 물이 오르고 움트는 소리로 수런거리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니 왠지 마음이 바빠진다. 텃밭에 상추씨도 뿌리고 감자도 심었다. 돌탑 밑에 수줍은 듯 다소곳하게 피어난 제비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반가워서 이름을 불러준다.

요즈음 청년들이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참 일을 해야 할 나이에 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자신을 낮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끝없이 실력을 가다듬고 세상과 소통하며 때가 오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옛날에 비단을 팔아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년이 있었는데 하루는 대관령 고개를 넘어가다가 한 노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청년은 덕화에 이끌려 스님의 뒤를 따라 오대산 동대 관음암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는데 노스님은 청년의 간청으로 제자를 삼으면서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는 다짐을 받아 두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부엌에 있는 커다란 가마솥을 옮겨서 거는 일을 지시하였다. 청년은 몇 번이나 시키는 대로 솥을 다시 걸고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잘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노스님은 몇 번이고 무너뜨리면서 다시 걸라고 화까지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묵묵히 노스님의 지시를 따를 뿐 아무런 불평도 한마디 없었다. 마침내 노스님은 청년의 굳은 인욕과 하심을 인정하며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는 뜻으로 구정이라는 법명을 내리고 제자로 받아 들였는데 뒷날 수행하여 크게 명성을 떨친 구정선사가 바로 그분이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고정되고 안정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그만큼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자기를 버리는 구정선사와 같은 하심과 인욕이 없으면 자기 구제는커녕 가족들의 생계를 보장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일속에서 일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행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일의 좋고 나쁨도 없을 것이고 하루의 피로함도 잊을 것이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노동을 수행으로 삼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가 나오게 되었다. 처음 출가한 행자시절에는 일로써 수행을 삼아 세상의 업력을 녹인다. 하지만 아직 수행의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힘으로 기운을 빼든지 일에 마음을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옛날 잘나가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체면을 생각한다면 자신은 물론 가족들을 지킬 수가 없다. 그래서 인욕과 하심의 일수행이 필요하다. 일하면서 몸과 마음을 살피면 온전히 일과 하나가 되고 마음은 점점 안정이 되면서 일이 몸에 달라붙어 더욱 숙련이 될 것이며 일삼매를 성취할 수가 있을 것이다.

쇠가 용광로에서 단련되어 나오듯이 사람도 힘든 일속에서 더욱 성숙되고 수행의 깊이도 묻어나서 들꽃처럼 깊은 향기가 난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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