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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들의 낮고 조심스러운 속삭임

기자명 법보신문

『큰스님 큰 가르침』
윤청광 지음/문예출판사

너무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스님들….

이 책을 보고 처음 품었던 생각입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는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들이 많이 눈에 뜨여 그저 덤덤한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설상가상으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건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그 분의 인생이 어김없이 달라지리라는 걸 나는 믿는다.”

에이, 설마… 하면서도 제목이 제목인 만큼 어쩌면 내가 건져 올릴 심오한 사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책을 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서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어느 사이 책상 앞에 단정히 앉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그 남루한 가사장삼을 걸친 스님들의 행적을 오졸오졸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경허스님에서 시작하여 성철스님까지 총 19분의 자취를 담담하게 풀어간 책.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의 모습도 엿보였고,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자의 퍼런 기백도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를 찡하게 감동시킨 것은 소위 ‘큰스님’들의 가장 낮은 자세, 가장 조심스러운 언행이었습니다.

막 사미계를 받은 법정스님이 저녁공양을 불과 10분 늦게 준비하기 시작하자 스승이신 효봉스님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굶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수행자가 시간관념이 그렇게 없어서야 되겠느냐?”

백양사의 곱고 아름다운 단풍이 알고 봤더니 만암 스님께서 인근의 굶주린 농민들에게 품삯을 주기 위해 일부러 조림작업을 시킨 결과인 줄도 처음 알았습니다. 굶주림을 해결해주겠다며 그냥 곡식을 나누어주다가 행여 그들의 마음을 다칠까 염려하여 떳떳한 노동의 대가로 곡식을 받아가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만난 우화스님의 행적은 또 어떻습니까? 다보사 주지소임을 맡기려 하지만 절대 받지 않던 우화스님. 결국 고암스님이 꾀를 내어서 “내 잠시 바람 좀 쐬고 올 테니 제발 그때까지만 주지 소임을 맡아주오”라며 슬쩍 소임을 떠넘깁니다. 마지못해 임시로 주지를 맡지만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우화스님은 여전히 이렇게 말했다지요.

“어디서 고암스님을 만나거든 내가 지금도 다보사에서 스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주시오.”

저자인 윤청광 선생님을 직접 뵙고 여쭈었습니다.

“어떤 스님을 큰스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답하시더군요.

“그 일생이 맑고 향기로워서 그 분을 만난 내 삶도 덩달아 맑고 향기로워지면 그 분이 바로 큰스님이지.”

책 몇 장 더 읽었다고 해서 요즘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불교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쭐대는 마음이 배어나오기도 합니다. 절대로 내 잘났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내 이야기로 결론을 맺어야 직성이 풀릴 때도 많아졌습니다. 앞으로는 저 대중들 사이에 큰스님 19분이 앉아계신다는 생각으로 강단에 서야할 것 같습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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