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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사람은 오래보라

기자명 법보신문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재상을 지낸 인물로 안평중이 있다. 유명한 『안씨춘추』를 지은이가 바로 그다. 공자와도 만난 적이 있는데, 공자가 제나라를 갔다가 뜻을 펴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러자 작은 키의 안자가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공자를 오도록 청할 만한 도량이 있습니까?”

다시 말해 공자 같은 위인을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데 더 머물게 하여 배울 수 있으면 배우는 게 좋지 않겠냐는 신하의 충언이다. 왕은 이 말의 뜻을 알아듣고 떠나기를 요청하지 않았다. 공자는 제나라에서 모든 것이 여의치 못했지만 안자에게만큼은 감동했다. 그러면서 안자에 대한 한마디가 이랬다.“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하였으니, 오래될수록 상대를 존경했다.” 그럼 안자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다음은 『사기(史記)』 「관안열전」에 나오는 이야기.

안자의 수레를 모는 차부(車夫)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다짜고짜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차부가 영문을 몰라 하자,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내가 오늘 문틈으로 당신이 안자를 모신 수레를 몰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안자는 키가 그렇게 작은데도 재상이 되어 널리 그 이름을 떨치고 있지요. 그런데도 그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남 아래에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도 그의 하인에 지나지 않을 뿐인데도 오히려 의기양양해 보이고 스스로 자만하는 모습이었소. 당신은 늘 이 모양이니, 앞날이 뻔하고 발전하지 못할 사람이기 때문에 이혼하자고 한 것입니다.”

차부는 아내의 이 말에 깊이 뉘우친바가 있었다. 당장 그 다음날부터 자세가 달라지고 사람이 더 없이 겸손했다. 안자도 그날부터 차부를 잘 지도해주었다. 차부 또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후에 벼슬에 나갈 수 있었다. 안자가 이런 면이 있었다는 것인데 공자는 안자의 친구 사귀는 태도에 더욱 감명을 받았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가졌을까?

“선여인교(善與人交), 구이경지(久而敬之). 사람과 잘 사귀기, 그것은 오래될수록 상대를 존경하는 것이다.”

사람사이는 미묘해서 오래 가기가 쉽지 않다. 오래 될수록 단점도 많이 보이고,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족한 면은 있는 것, 한 신도가 법당에 백합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하얀 백합에게도 검은 그림자가 있다”는 헝가리 속담이 떠올랐다. 솔로몬 왕은 성전에서 몸을 씻는 의식을 행하는 사제들을 위해 만개한 백합 모양의 큰 물통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외면의 순결함으로 내면의 순결함을 자극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백합 같은 순백’의 완전무결함은 우리가 꿈꾸는 자기도취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피아의 관계성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보는 나와 비춰지는 나는 항상 역방향이다. 만사 그렇듯, 밖에서 찾지 말고 안으로부터 찾아야 차원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귀고 오랜 사이일수록 그 마음을 잃지 않음이 장구함의 비결이겠다.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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