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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심청의 효

기자명 법보신문

척불의 조선도 민족 기저에 불교 흘러
심청전은 유불공조 조화된 불후 고전

윤리 질서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자식이 어버이에 대한 효도일 것이니, 이는 시공이나 이념이나 종교적 신앙을 초월하여 중요시된다. 그러나 사람살이의 윤리에는 부부가 으뜸이 된다. 부부가 있어야 사람살이의 집단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인상을 받아, 여타 종교의 교시에는 효도를 소홀히 한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선조에는 유교가 사회질서의 틀을 지배하니, 불교는 자연 뒤로 밀려나게 되고, 충효와 같은 윤리 질서가 불교에는 중요시되지 않는 것 같은 오해를 하게도 된다. 고전 소설의 으뜸으로 치부해도 손색이 없을 〈심청전〉의 주제는 효이다. 이 소설이 조선조의 작품이니, 이것이 바로 유교적 교리가 뒷받침이 되어 형성된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짜임새는 불교적 사유작용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주인공 심청의 효는 아버지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시킨 것으로 이해하나, 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하여 인당수의 제물로 희생한 것은 효가 못된다. 유교적 교시로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가 어버이 앞에서의 죽음이다. 어버이의 유체인 머리털 하나도 훼손할 수 없는 것이 효의 시작인데, 부모의 유체를 희생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 앞에서의 죽음이란 큰 불효이다.

자식의 죽음을 상명(傷明)이라 하는데, 이는 자식이 죽으면 눈의 시력이 상실된다는 의미이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 어둠을 띄우기 위하여 죽는다 함은 아버지의 눈을 두 번 멀게 하는 것이 된다. 효의 주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심청을 살려야 하고, 끝내 아버지의 눈을 띄워야 한다. 그래서 허구인 그 뒤의 줄거리가 필요하다. 심청을 환생시켜야 하고 잔치를 벌려 아버지의 눈을 띄워야 한다.

심청의 효는 유교적 교리를 살리기 위하여 불교적 교리를 시의 적절하게 습합시켜 이루어낸 것이다. 스님을 만나 공야미를 시주하도록 유인된 작품의 복선이, 연꽃으로 피워 황후로 등극하게 하고, 맹인 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만났고, “아버지” 하고 부르는 이 절규가 심봉사의 눈을 띄우고야 말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있어 시공을 초월한 절대 절묘의 효가 된 것이다.

부처님의 10대제자의 한 사람인 목건련은 아귀도로 떨어져 음식을 먹지 못해 죽게 된 어머니를 구하기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란분회’를 열어 시방 대덕의 스님들을 공양하여 마침내 어머니를 구했고, 부처님은 “미래세의 일체 불제자로 효도를 행하려는 자는 응당 이 우란분회를 받들라.” 하셨다.

심청전의 뒷부분은 이래서 중요한 구성이다. 연꽃을 빌린 환생도 그러려니와, 황후가 벌리는 맹인잔치는 우란분회의 공양으로 부처님이 목련존자에게 지시함을 심청에게 내린 셈이다. 목건련은 아귀도에서 어머니를 구원했고, 심청은 아버지를 맹인에서 구원해 냈다.

심청전은 유교 사회에서 추구하는 효의 실현이 자칫 ‘효도하려다 효도를 손상시킨다.’는 모순에 빠질 위험을, 불교적 지혜로 극복시킨 사례의 하나이다. 조선조 사회가 배불을 넘어서 척불로 이해될 때도 있지만, 민족적 정신의 기저에는 항시 불교적 사유가 흐르고 있었고, 그러한 사례의 실증으로 심청전은 탄생되었다. 그러한 믿음의 힘이 오늘까지도 불멸의 작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세의 잘살기를 시도하려면 내세의 죽음을 준비하는 잘죽기도 알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는 듯한데, 우리의 조상들은 벌써 그러한 실례를 〈심청전〉을 통하여 예시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심청전〉이야말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유불공조로 불후의 고전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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