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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존자, 그가 남긴 기록들

기자명 법보신문

『아난존자의 일기』
원나 시리 지음 / 운주사

세상은 한 사람에게 참 많은 기회를 줍니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기회,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 추종자를 많이 거느릴 수 있는 기회…. 이런 기회는 내게도 무수하게 찾아왔습니다만 나는 거부하였습니다.

내 이름은 아난. 모든 명예와 부와 환락을 포기하고 내가 선택한 길은 수행자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석가모니 부처님의 시자가 되어 수행자 시절의 거의 전부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내 사촌형님이신 부처님은 거목이었습니다. 그 뿌리가 튼실하여 대지에 굳게 박혀 있었고 우주가 공급하는 영양분을 맘껏 빨아들여 더할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쑥쑥 자라난 거목이었습니다. 그 거목에서 숱한 가지들이 뻗어 나왔고 짙푸른 잎과 향긋한 꽃들이 조금도 쉬지 않고 피어나고 돋아났습니다. 나는 그 거목의 그림자였습니다.

애초 부처님과 그 분의 큰 제자들이 저에게 부처님의 시자(侍者)가 되라고 할 때 나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편으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내가 과연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로 인해 부처님과 승단을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상처입거나 얼룩이 진다면 그 감당을 어찌할 수 있을까?

언감생심!

그 일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부처님에게 감히 이런 조건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제가 없는 그 자리에서 설법하신 내용은 절에 돌아와 제게 고스란히 다시 들려주십시오.”

부처님은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부처님의 곁을 지킬 때나 그러지 않았을 때나 부처님 일생의 모든 순간을 마치 내 일처럼 생생하게 가슴에 담아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부처님이 그리울 때면 남몰래 가슴속을 들여다봅니다. 그 속에 부처님과 그 분의 제자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거목의 그림자로 살아왔는데 지금 그 거목은 이미 스러져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림자는 한 동안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헤매며 지내왔습니다. 내 자리가 부처님 곁이 아닌 곳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벌거벗고 들판으로 내쫓긴 느낌입니다.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 부끄러운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세상에 드러난 것 같은 기분입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속속 새로운 얼굴들이 교단에 들어옵니다. 그들은 여전히 부처님 계실 때와 다름없이 나를 대하지만 가장 나이 많은 수행자가 되어 절의 뜨락을 오가는 나는 감지합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가슴속에 들어 있는 추억의 상자를 꺼냈습니다. 그 상자 속에는 부처님과 함께, 그리고 그 분의 큰 제자들과 함께 지낸 20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 상자 속에 담긴 추억은 주인을 잃은 낡아빠진 고물덩이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내 기억의 힘이 스러지기 전에 한 장면 한 장면을 이어보았습니다. 그러자니 이렇게 두툼한 앨범이 완성되었군요.

이제 나는 로히니 강가로 갑니다. 그곳에서 삶을 접을 것입니다. 나 아난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만 오래오래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억해주시길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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