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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장편소설 - 인연 32

기자명 법보신문

제 7장 날마다 좋은 날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마음은 만법의 왕이니 일체는 오직 마음이 창조하도다
본래의 너를 깨달아 법의 등불을 온 누리에 비추리라”

고명인은 미국으로 돌아간 지 3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사업체인 슈퍼 체인 중 한 지점에서 화재가 나 뒷수습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왔다. 혜각과 일타스님의 유적지를 마저 순례하려고 했으나 큰 사고였으므로 부사장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어서 급히 출국했던 것이다. 황인종에게 상권을 잃은 흑인들이 적개심을 가지고 저지른 방화였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고, 화재보험에 들어 두었으므로 소실된 상품에 대한 보상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사고가 수습되자, 고명인은 서둘러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혜각과 일타스님의 유적지를 순례할 수는 없겠지만 일타스님의 맏상좌 혜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혜인은 정혜사 선방에서 동안거를 마치고 자신의 수행처인 단양의 도락산 광덕사로 돌아갈 것이니, 그때 찾아오라고 말했고, 고명인은 반드시 그곳을 방문하여 혜인의 얘기를 듣기로 했던 것이다.

고명인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여장을 풀자마자 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인의 휴대폰 번호를 수첩에 적어두었기 때문에 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혜인은 어쩐 일인지 단양의 광덕사에 있지 않고 제주도의 약천사로 내려가 있었다.

“스님, 정혜사 선방에서 스님을 뵀던 고명인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아, 미국에서 오신 고 선생이군요.”
“스님, 오늘 들어왔습니다.”
“국내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귀국한 것은 스님께서 동안거 해제하면 스님이 계신 광덕사로 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억이 납니다. 일타스님의 유적지를 돌고 있다고 했지요.”
“스님, 내일 단양의 광덕사로 가 뵙겠습니다.”

그러나 혜인은 며칠 뒤에 오라고 했다.

“제주도 약천사에 법문을 하러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포에서 또 법문이 있으니 며칠 뒤에 만나면 어떠하겠습니까.”

혜인의 스케줄을 고명인이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혜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스님, 그렇다면 언제 찾아뵐 수 있겠습니까.”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고명인은 맥이 풀렸다. 귀국한 것은 오로지 혜인을 만나 일타스님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며칠 동안 빈둥거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은근히 화도 나고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인사로 내려가 혜각을 만나고 오는 것도 별 흥미가 나지 않았다. 혜각은 포교국장이란 자신의 소임을 사느라 바쁠 텐데 공연히 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혜각과는 올 늦가을쯤 다시 만나기로 돼 있었다. 일타스님의 입적주기 전에 혜각이 스님의 유적지를 순례할 때 함께 동행을 하기로 약속해두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고명인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수덕사로 내려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때 혜인이 정혜사에 머물고 있는 대중 중에서 일타스님에 대한 토막일화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는 스님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설정 선원장이라고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수덕사는 서울에서 가까우니 이틀간의 일정으로 가도 되고 당일치기도 가능했다. 일단 임시변통이지만 계획을 세우고 나니 어느 정도 기분이 전환됐다. 수덕사에서 정혜사로 가는 가파른 산길을 차로 오르고 난 뒤, 산 아래 펼쳐진 세상의 풍경을 보고 상념에 잠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마치 달에 올라 지구를 보는 듯한 호연지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무엇이든 작게 보면 하찮아지고 크게 보면 대단해지게 마련인데, 극단에 치우지지 않는 중간의 접점을 생각했던 곳이 바로 정혜사 마당이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고명인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수덕사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아침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할 생각으로 서둘렀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고 선생. 혜인스님이오.”
“네, 스님. 무슨 일이십니까.”
“제주도와 김포에서 할 법문이 미뤄졌소. 그래서 오늘 비행기로 서울로 가고 있소. 서울에서 만나면 안 되겠소.”
“광덕사의 산중 분위기도 느끼고 싶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먼저 가 있어요. 서울에 도착해서 바로 갈 테니까요.”
“스님, 고맙습니다.”

뜻밖에 예정을 바꾸게 되었으나 고명인은 느긋해졌다. 이미 광덕사 가는 길은 알아두었으므로 서두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아침은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지 않고 호텔 후문으로 빠져나와 대학을 졸업한 뒤 첫 직장을 다닐 때 즐겨먹곤 했던 복어매운탕을 생각하며 일식집을 찾았다. 그러나 복어매운탕 집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한 식당을 발견했으나 일식집이 아니라 수제비를 파는 분식점 같은 곳에서 복어매운탕 입간판을 내놓고 영업하고 있었다. 음식만큼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드물 터였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그러니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늘 예전의 맛만 못하게 마련이었다.

고명인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예전의 맛을 조금은 포기한 채 복어매운탕을 주문했다.

“복어매운탕으로 주세요.”

냄비에 넣어진 복어 토막과 무, 대파, 마늘양념은 그대로였으나 가스불에 끊여진 맛은 역시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고명인은 수저로 국물을 휘휘 젓다가 그만 두었다. 차라리 수제비를 시켜 먹을 것을 하고 후회했다.

그래도 갓김치에 밥을 반 공기나 비웠으니 요기는 한 셈이었다. 파김치를 잘 먹는 고명인을 보고 분식점 아주머니가 자랑을 했다.

“돌산에서 가지고 온 갓김칩니다. 요즘은 주문만 하면 다음날 바로 택배로 오니 늘 싱싱한 김치를 먹을 수 있습니다.”

고명인이 복어매운탕을 거의 먹지 않고 나가자 미안했던지 갓김치 자랑을 해대는 아주머니였다. 그러나 고명인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광덕사로 갈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아주머니, 영동고속도를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어디로 가시는데요.”
“단양입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원주에서 단양 가는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면 됩니다. 아마 서울에서 단양까지 1시간 30분이면 될 겁니다.”
“잘 아시네요.”
“제천이 고향입니다.”

복어매운탕 집을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주머니에게서 예전의 인심을 보는 것 같아 식사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맛에 대한 아쉬움을 인심으로 보상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고명인은 바로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빌린 승용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아침의 주차장은 차들이 빠져나가는 소음으로 시끄러웠다. 단양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광덕사까지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호텔 프런트에 예약하여 빌린 승용차이기 때문인지 엔진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핸들도 여성용처럼 부드러웠고, 승차감도 최상의 상태였다. 국산의 승용차도 이제 미국산과 경쟁하는 단계를 넘어 중형차종에서는 상품성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도락산 광덕사는 생각보다 찾기가 쉬웠다. 그래서인지 고명인은 휴게소에 들러서 단 한 번도 길을 묻지 않고 원주와 단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광덕사 이정표를 발견하고 달렸다.
‘왜 도락산(道樂山)일까. 이 산에 들면 도(道)를 누구라도 즐기게 된다는 뜻일까.’

고명인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침인데도 산그늘이 짙은 협곡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고명인은 진달래꽃이 붉게 핀 좁은 계곡의 길로 들어선 지 10여 분 만에 승용차를 세웠다. 귀틀집 방식으로 지은 가람들이 산자락을 깎은 곳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가람들의 첫 인상은 통나무 별장 같았고 휴양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귀틀집 처마 밑의 ‘광덕사’라는 편액이 그러한 인상을 바꿔주기는 했지만 통나무 별장 같은 잔상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종무소 옆의 조그만 연못에서는 솟구치는 물줄기가 힘찼고, 거대한 육각형의 백만불전(百萬佛殿) 밑으로는 제법 많은 수량의 계곡물이 콸콸콸 소리치며 흐르고 있었다.

고명인은 종무소로 바로 들어가 사무원 아가씨에게 찾아온 용무를 밝혔다.

“혜인스님을 뵙기로 약속하고 왔습니다.”
“네, 스님께서 전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광덕사로 오고 계시니 종무소에 앉아서 조금 기다리시면 됩니다.”
“나가서 경내를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고명인은 광덕사에 막 도착했을 때부터 눈길을 끌었던 백만불전으로 올라갔다. 아직 불사중인인데, 거대한 실내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법당이었다. 조감도에 의하면 백만불전 옥상에 대불 좌상이 조성되는 모양인데 아직 대불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명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텅 빈 백만불전 안으로 들어가 큰 기둥에 늘어뜨려진 대형현수막의 글씨들을 읽었다. 원만한 불사회향을 염원하는 글이 대부분인데, 혜인의 대원력을 찬탄하는 글도 있었다. 고명인은 혜인의 대원력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문득 궁금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처럼 조그만 체구에서 산 하나를 쌓아가는 듯한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종무소로 내려온 고명인은 통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에 앉아 마치 무슨 단서를 찾는 형사처럼 책상과 벽을 주시했다. 이윽고 고명인의 눈길이 멈춘 곳은 혜인의 시(詩)가 적힌 액자였다. ‘법의 등불을 온 누리에 비추겠다’는 혜인의 원력이 드러난 게송이었다.

마음은 만법의 왕이니
일체는 오직 마음이 창조하도다
본래의 너를 깨달아
법의 등불을 온 누리에 비추리라.
心是萬法王
一切唯心造
悟得本來汝
法燈照法界

갑자기 아가씨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경내로 들어오는 승용차를 향해서 합장을 하고 있었다. 혜인이 탄 승용차가 분명했다. 그러나 혜인은 종무소로 바로 오지 않고 자신의 처소로 올라가버렸다.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부르시면 올라가면 됩니다.
“연세도 있으신데 무리하셨을 겁니다.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쉬지 않고 오셨을 테니까요.”
“그런데 처사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제야 아가씨가 고명인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냥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약속이 된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스님께서 불사를 하시느라고 많이 바쁘십니다. 전국 어디라도 부르면 달려가 법문을 하시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광덕사 불사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광덕사의 불사는 전적으로 혜인에게 의존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아가씨의 얘기였다.

“스님께서 힘드시겠군요.”
“하지만 큰스님께서는 해내실 거예요. 의심 없이 간절히 원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
“저 달마도를 그리신 분도 혜인스님입니까.”
“그런 것 같아요.”
“혜인스님은 재주가 아주 많으신 팔방미인인 것 같습니다.”
“호호호.”

아가씨가 웃으며 의자에 앉아 장부를 펴더니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 순간 인터폰이 울렸다. 인터폰을 든 채 아가씨가 말했다.

“큰스님께서 회주실로 올라오시라 합니다.”
“회주실이 어딥니까.”
“백만불전 가는 길에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2층 목조건물이군요.”

고명인은 종무소를 나와 곧장 회주실로 갔다. 혜인은 광덕사 회주로 주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1층 현관에서 한 스님이 고명인을 기다리고 있다가 2층 회주실로 안내했다. 고명인은 정혜사에서 혜인을 한번 본 적이 있으므로 2층 계단을 오르면서 막연히 반가움 같은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혜인도 마찬가지였다. 혜인이 고명인을 보고서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참회의 절을 해야 하는데 오늘은 급히 움직이는 바람에 108배를 못했어요. 그래서 방금 30분 동안 108배를 한 겁니다.”

고명인은 문득 108배가 무언인지 알고 싶어져 물었다.

“스님, 108배는 왜 합니까.”
“부처님이 위대하시고, 팔만대장경의 진리에 의해서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감사의 절, 참회의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혜인은 수만 명의 신도들이 자신의 법문을 듣고 있는 것처럼 큰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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