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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교수의 詩로 읽는 불교] 9.시간①-다산 정약용의 ‘애절양’

기자명 법보신문

관료들 수탈에 스스로 ‘거세’한 실화 고발

<사진설명>「목민심서」를 저술한 다산 정약용의 생가.

자살하는 사람들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영위한다.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내고 난 후 유일하게 기댄 자식마저 교통사고로 잃고 몸마저 동네 폭력배에게 유린당한 여인마저 살아간다.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빚만 쌓여가는 살림 속에서도, 곧 과로사로 죽을 정도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수모와 멸시와 조롱과 천대 속에서도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늘 고통인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은 물론 가족과도 거의 매일 싸우면서도 사람들은 “다들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난 때는 알아도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부조리하다. 누구나 이상과 꿈을 바라면서도 누구도 그에 이르지 못한 채 그 괴리를 실감하는 것이 삶이라니 부조리하다. 무엇보다도 악한 이들이 부유하고 선한 이들이 가난한 것이 부조리하다.

망자-젖먹이까지 징세

노전(蘆田)마을 젊은 아낙 통곡소리 끝이 없네/현문 앞 달려가선 하늘 보며 울부짖네./쌈터 나간 지아비가 못 돌아올 순 있어도/사내가 제 양물 자른 소리 듣도 보도 못하였네.//시아비 상복 벗고 아이 배냇물 채 안 말랐는데/삼대 이름이 모두 군보(軍保)에 실렸구나./가서 아무리 호소해도 문지기는 호랑이요,/이정(里正)은 으르렁대며 소마저 끌어갔네.//칼 갈아 방에 들자 바닥엔 피가 흥건하고,/이 모두 자식 낳은 죄라 스스로 부르짖네./무슨 죄 있어 잠실궁형(蠶室宮刑) 당했던가/민() 땅 자식들 거세하던 풍속만도 참으로 가엾거든//자식 낳는 건 하늘이 정한 이치,/하늘 닮아 아들 되고 땅 닮아 딸이 되지./말과 돼지를 거세해도 가엾다 이르는데/대를 이어야할 사람 삶에 있어서랴.//부잣집들 일년 내내 풍류나 즐기면서/낟알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으니/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차별인가/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 편을 읊노라.

다산 정약용의 ‘양물의 자름을 슬퍼하며(哀絶陽)’이란 시이다. 백성들 편에 선 사람들, 올바름을 추구하는 선비치고 이 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있을까?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적은 시라고 언급하고 있다. 조선조 봉건체제의 모순이 점점 첨예해지면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져 있던 가경(嘉慶) 계해년, 곧 1803년 강진 땅 노전(蘆田)에서 있었던 일이다.

봉건 해체기의 조선조 사회, 나라는 기울고 이를 새로 대체해야 할 제도와 체제는 아직 오지 않았다. 뜻 있는 자들은 권력을 잃고 자신의 이익에 골몰한 자들이 그 자리를 독차지했다. 가렴주구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당시 관료와 토호들은 서민들을 처참하게 짓밟았고 처절하게 약탈하였다. 관리 가운데 직접적인 수탈자인 지방 관료, 특히 아전들의 탐학은 극에 달하였다.

그때 강진 땅 노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다산이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노전은 마을 이름이다. 글자로 보아 강진 인근서 갈대밭이 있는 해안가 마을이겠다. 이곳의 지방관들은 죽은 시아버지는 물론 낳은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군보에 편입시켜 버렸다. 죽은 시아버지나 아직 핏덩이에 불과한 아기가 군대에 가거나 정병을 보조하는 보인(保人)으로 나설 수 없으니, 이를 공식적으로 면제받으려면 대신 쌀이나 군포를 내야 한다. 이미 착취당할 대로 착취를 당한 지라 낼 군포가 없다. 그러니 지방 마을의 공공 사무 및 연락을 맡아보는 자인 이정은 군포 값으로 농민에게 생명과 다름없는 소를 토색질해 갔다. 그러자 방으로 들어가 칼을 뽑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러한 곤액을 받는구나.”라며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이를 모두 지켜본 아내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 억울함과 분통함을 어찌 필설로 표현이나 할 수 있으리. 그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성기를 가지고 관청으로 나아가 따졌지만, 그러다 안 되어 울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였지만 문지기는 막아선 채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다산의 말대로 아들 낳아 기르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이다. 배냇물도 안 마른 아이를 떡 하니 군보에 올려놓고 그 대가로 가난한 백성의 유일한 재산이자 호구지책인 소를 토색질했으니 그 농민이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원통하였으면 자신의 성기를 잘랐을까? 다산은 중국 복건성 민()족이 어린애를 낳자마자 거세하여 이웃나라의 내시로 바치며 생을 연명하던 풍속도 가혹하고 살벌한 일이지만, 이 일, 곧 잠실에서 자신의 성기를 자른 일이 그것을 넘어서는 부조리이자 비극이라고 애통한 소리로 고발하고 있다. 『시경(詩經)』 ‘조풍(曹風)’ 중 뻐꾸기와 그 새끼 7마리를 빌어 군주의 도리를 노래한 「시구(鳩)」 篇을 읊으며, 이 부조리한 세상에 서야 할 올바른 군주의 도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부패한 조선 관료사회 비판

이어서 그리 백성이 목숨을 바쳐 억울함을 호소해도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품지 않는 조선조 관료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생식기를 자르는 세상, 말 그대로 불임의 세상, 주검의 나라인 것이다. 그렇게 토색질하는 이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풍악을 울리며 떵떵거리며 살고 착한 백성들은 자식마저 낳지 못한 채 그리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가? 부패와 부조리, 수탈이 극에 달하였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도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독립투사와 그 가족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감옥과 사글세방을 전전하고 친일분자와 후손들은 권력의 정점에 서서 온갖 영화를 누린다. IMF 위기 때도 잘렸다며 술 먹자고 전화하는 녀석들은 모두 뇌물도 아부도 모르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한 착하디 착하고 성실한 ‘범생이’들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농약중독과 알코르중독으로 하나 둘 스러지고 이를 관장하는 관료들은 웰빙 음식만 찾아다닌다. 청렴한 공무원은 말단을 못 면한 채 생계비에도 모자라는 월급으로 하루를 허덕이고 ‘아부를 예절로, 뇌물을 관례로’ 아는 공무원들은 승승장구 출세하고 돈을 주체하지 못하여 계집질에, 수백 만 원짜리 위스키에, 해외 여행과 골프에 정말 공무가 다망하시다. 얼마나 이런 괴리가 뿌리가 깊었으면 “착한 일을 하면 손해본다.”라는 말이 속담처럼 되었을까? 과연 부조리한 것이 세상의 본질인가? 왜 선한 자가 복을 받지 못하는가?

처음 이 질문을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재수할 때인가 ‘임국희의 여성살롱’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접하였다. 대학 때 1.5평의 방에서 서너 식구가 기거하면서 구걸로 연명하는 일세방 주민들과 생활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가장 선하게 사는 그들을 보면서 이 질문은 내 인생의 최대 화두가 되었다.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나의 젊은 나날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렵게 구한 책을 읽고 고민을 하였고 다시 고민을 하였다. 수많은 나날을 토론하였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지하신문을 만들기도 하고 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하였다.

선하면 가난한게 세상이치?

어르신들께 여쭈어도 보았으나 가슴이 확 뚫리는 답을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유태인들에게 지혜의 스승 역할을 하는 랍비들에게도 이 질문은 오랜 동안 수수께끼였으니. 물론 일상 삶의 차원에서는 체제와 제도의 잘못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대로 법이 바로 서고 제도가 선한 자를 복 받도록 하고 악한 자가 망하게 하면 어찌 “착하면 손해 본다.” 라는 말이 유행할까. 그러니 제도와 체제를 그런 방향으로 개혁하는 문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하늘을 우러러 티끌만한 악조차 행하지 않은 아이가 병으로, 교통사고로 죽는 일도 그 모순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것은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니 초월적 존재나 우주의 원리에 물어볼 일이다.

이도흠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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