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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는 연민도 사치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 / 이후

얼마 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건 늘상 벌어지는 일’이라 여기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32명의 사망자’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기사가 뜨자 사회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곧이어 미국의 NBC방송에서 세상을 향해 지독한 저주와 경고를 퍼붓는 범인의 사진과 동영상이 방송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은 그런 영상매체를 통해 자신도 그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음을 감지하고 새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사람들의 화제는 가공할 살상의 현장에서 희생자들이 얼마나 끔찍한 두려움과 고통을 느꼈을까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폭력의 절정이나 타인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범인의 국적이나 범행 동기, 현장 스케치 그리고 민간인의 총기소지를 허용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가 대체적인 관심의 초점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은 분개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듯 혀를 차기도 하였지만 그들이 과연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만나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진실하게 느끼고 있을까요?

모국인 미국에 가장 신랄하게 비판을 던지는 에세이작가이자 예술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은 오래전부터 전쟁판의 참상을 찍은 사진들을 분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진작가들이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찍어온 사진들은 과거 그 어떤 부지런하고 모험심에 가득 찬 기자들도 이루지 못했던 가장 강렬하고 폭넓은 공감대를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1993년부터 3년 간 세르비아인의 맹렬한 폭격이 퍼붓고 있는 보스니아에 거주하였던 저자는 과연 이런 생생한 공포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려 진부하기까지 한 전쟁의 실체를 영상매체의 이미지로만 접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고통을 실제로 견뎌내야 하는 타인의 삶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가 궁금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세상을 알고 전쟁의 참상을 새삼 깨달으며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느껴야 할 것인가를 교육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정보를 원하게 되고 심지어는 교묘하게 연출된 사진들을 만나오면서 이제 내성이 생기고 말았는지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연민을 토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와 같은 연민은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과 무관하다는, 즉 우리의 무고함을 증명해주는 어느 정도의 뻔뻔한 반응이 아니겠냐고 조심스레 반문합니다.

그리고나서 수전 손택은 우리에게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라고.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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