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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

기자명 법보신문

출-재가의 엄격한 역할 구분
불교 교단 발전시키는 원동력

최근 들어 생산 활동이나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님들을 발견하는 일이 많아졌다. 백장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청규의 영향으로 한국의 출가교단에서도 사찰 내에서 밭을 가꾸는 등의 노동은 거의 의무처럼 여겨져 왔는데, 최근에는 세속적인 차원의 경제 활동도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부처님 당시의 교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에는 그다지 거북스럽기만 하지는 않은 듯하다. 아니, 오히려 포교나 사찰경제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높아, 사찰의 경제적 자립이 주된 논의거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초기불교교단의 전통을 이어받은 상좌부불교국가에서는 다소 시대의 변화를 겪고는 있지만, 오늘 날에도 여전히 승려의 경제 활동이나 생산 활동은 금지되고 있다. 사찰에는 채소를 가꾸는 밭도 없으며,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도 없다. 오로지 오전 중에 한 번 걸식을 통해 재가신자가 발우에 담아 주는 음식이 그들의 식사가 된다. 출가자의 의식주 해결은 주로 재가신자의 몫인 것이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출가교단은 생산 활동을 철저히 방기한 종교 집단이었다. 출가자의 모든 생활은 재가자의 보시를 통해 해결되었으며, 양자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된다.

출가자는 수행에 힘쓰고 청정한 행을 실천하며 재가자들을 위해 법을 설해주는 것이 주된 의무였고, 재가자는 그 보답으로 그들에게 의식주나 약품 등의 보시를 하고 항상 불자로서 올바른 생활태도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적어도 초기불교교단에서만큼은 출가와 재가의 이 이중구조가 철저히 유지되고 있었다. 재가자들이 출가교단에 보시를 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의 공덕(puJJa, 복)을 쌓기 위해서이다. 흔히 출가교단을 복전(福田)이라 표현하는데, 이는 거기에 보시의 씨앗을 뿌리면 후에 복덕이 발생하는 밭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보시의 대상에 따라 공덕의 양은 달라진다. 같은 출가자라도 탐욕에 사로잡힌 자에 대한 보시는 공덕을 쌓지 못하며, 덕이 높고 청정한 자에게 베푸는 보시야말로 큰 공덕을 가져온다고 여겨졌다. 좋은 밭에 뿌린 씨앗이 훗날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일반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공덕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존경할 만한 수행자를 추구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출가 교단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초기경전에서는 출가자에 대한 보시가 많은 공덕을 낳는 행동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노골적인 요구로 느껴져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좀 그렇지만, 당시의 종교가들은 가난하고 간소한 생활 속에서 계와 율을 잘 지키는 등 청정한 모습으로 재가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주장을 일반사람들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부처님이 출가교단을 모든 생산 활동을 방기한 종교집단으로 만드신 배경에는 물론 당시 인도 일반의 관습이 존재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청정한 모습으로 재가자에게 존경받는 출가자, 그리고 훌륭한 출가자를 공경하고 받드는 재가자, 바로 이 아름다운 조화가 불교교단을 발전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이제 와서 초기불교교단의 운영 시스템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행자나 사찰의 적극적인 경제 활동이 결과적으로 많은 부패와 타락을 가져왔다는 점은 불교의 오랜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출가와 재가라는 철저한 이중구조를 통해 부처님이 실현하고자 하셨던 불교교단의 올바른 모습, 지금이야말로 이를 되돌아보며 우리 모두 스스로의 삶을 검토해 볼 때가 아닐까 싶다.
 
도쿄대 외국인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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