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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스님의 말 한마디

기자명 법보신문

사명당 지혜-용기로 전란 마무리
스님 가르침 양국화해에 도움 되길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태평양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위치이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내룡(來龍)인 등줄기의 산세는 대륙을 등에 업고 있어,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이다.

맛있는 풀잎에 벌레가 많이 몰리듯, 지리적 조건이 이렇듯 아름답기에 과거의 역사 속에는 우리 강토를 침식하려는 벌레들의 군집(群集)이 잦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혹독했던 것이 1592년(선조25)의 임진왜란이었을 것이다. 일본열도는 지형적으로 대양 속에 떠 있으면서 아세아대륙 쪽으로 굽어 있어 항시 대륙을 흠모하는 형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국토가 버티고 있어 넘보기 어려운 풍수지리이다. 이를 항시 못마땅해 하다가, 대륙으로 나아갈 터이니 길을 빌려 달라며 달려 들었던 것이 임진의 왜란이다.

이 때 전란의 총지휘로 국난을 타개했던 중심인물인 한 분이 서애 류성룡(西厓柳成龍, 1542~ 1607)이다. 작고하신 지 올해가 400주년이다. 서세(逝世) 400주년 추모제전이 열린다 한다. 당시 침략자인 일본의 소서행장(小西行長), 구원군이었던 중국의 이여송(李如松),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李舜臣)의 후손이 서애선생의 마을에서 자리를 함께하여 화합의 장을 연다 한다. 전란의 가해자 피해자라는 형식적 틀을 떠나서,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시점에서 그 전초적 아세아권역의 융화에도 뜻 있는 일이라 여겨져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전란의 극복을 위하여 선봉에 섰고, 전란 후의 수습을 위하여 지대한 공이 있었던 두 스님이 계신데, 이들의 후손이 그 자리에 없음은 아쉽게 느껴진다. 산중에서 분연히 궐기하여 지팡이 하나로 적을 퇴치한 서산대사(西山大師)와 그 뒤를 이어 전란의 뒷마무리에 혁혁한 공을 남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추모도 함께해야 함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즘에 난중에 여러 일화를 남긴 사명대사의 어록을 살펴 오늘의 우리에게 긍지와 반성을 삼아보자. 부산의 적진에서 사명당이 왜장 가등청정(加藤淸正)과의 대화는 역시 스님의 번쩍이는 지혜이다. 가등이 “조선에 보물이 있느냐” 하니 사명당은 “요사이 우리 조선에는 보물이 없고, 그런 보물은 일본에 있다.” 하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니, “지금 우리나라에는 그대의 머리로 보물을 삼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보물이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였다. 적장도 여기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란의 뒷마무리를 위하여 외교사절로 일본에 가니, 만나는 사람마다 “이 분이 바로 그 보물을 말한 분이냐” 하며 존경하였다. 어떤 사람이 신농씨(神農氏 상고시대 농사를 가르치고 모든 약초를 맛보아 의술을 개창한 황제)가 약초를 맛보는 그림을 가지고 와 찬문(讚文)을 써 달라 하니 다음과 같이 써 주었다.

사람의 육신에 소의 머리이나/ 사물을 열어준 큰 성인인데/ 사람의 얼굴에 짐승의 마음이면/ 무슨 성품이라 해야 하나/ 라라라, 푸르고 푸른 손 안의 풀은/ 만고의 세월 창생을 위했네.

신농씨는 얼굴은 사람인데 몸체는 소의 모습이었다 한다. 그래도 만고의 인류를 구제하는데 전쟁을 즐긴 그대들은 사람 얼굴에 짐승 마음이라고 하는 따끔한 일침이다. 동양삼국의 화해의 장에 사명의 영정이라도 걸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기에 또 한면 우울하게 하는 기사를 접했다. 일본의 조취(鳥取 돗도리)현에 한일우호의 비석을 세워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했는데, 현청의 지시로 동해라는 명문을 뭉개버렸다는 보도를 보았다. 피해자인 우리가 화해하자고 손을 내미는데 가해자인 저들은 항시 가해자의 오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 3국화해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하회마을에서 글자 그대로 물줄기가 화해로 돌았으면[河回] 얼마나 좋을까. 간절한 소망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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