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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아픔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겁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인욕
  • 입력 2007.06.18 10:19
  • 댓글 0

20년 남편 간호하며 봉사로 포교
경찰병원불자회 윤 애 경 부회장

1987년 1월 28일 윤애경(48·보련화) 보살은 서울로 향하는 전동차에 쫓기 듯 몸을 실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이제 일주일, 아직 몸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지만 남편의 연락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3일 전, 남편 동료로부터 ‘남편이 작은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지만 곧 퇴원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당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돼 경찰공무원인 그가 행여 다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때였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된 남편

묻고 물어 어렵사리 찾아간 경찰병원, 남편이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슬러 문을 열고 중환자실로 들어서자 자는 듯이 누워 있는 남편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작은 상처하나 없는 모습에 잠시 마음을 놓기도 했지만,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숨을 이어가는 모습은 이내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교통사로로 인한 머리와 장기 손상으로 의식불명 상태였다. 급한 마음에 꼬집어도 보고 때려도 봤지만 남편은 작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의 동료들은 해산한지 얼마 안 된 자신을 위해 일부러 감춘 것이라 해명했지만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의식만 회복하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담당 의사의 설명에도 떨리는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곧 털고 일어날 것이란 남편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목석처럼 누워만 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다. 네 살배기 딸아이와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 된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할 행복한 미래는 자꾸만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천리만리 멀게만 느껴졌다. 넋이 나간 듯 한참을 헤매다 문든 정신을 차린 곳은 가끔씩 산책삼아 찾았던 집근처 사찰이었다. 향냄새가 싫어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법당, 그러나 윤 보살은 이미 법당 안에 엎드려 있었다. 절로 눈물이 흘렀다. 실컷 울고 싶어 엎드렸고, 부처님께 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한참을 울다 일어나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계시더군요. 그리고 율무로 만든 108염주를 건네며 열심히 기도하면 반드시 이뤄질 거라며 제 손을 잡아 주는데 또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불교와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어요.”

다음날 딸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모든 살림을 정리해 서울로 올라왔다. 끝을 알 수 없는 병원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지만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을 볼 수 있는 건 고작 하루 세 차례 정해진 면회시간 뿐, 그 외에는 병실 유리벽을 통해 남편의 상태를 살피며 스님이 준 염주를 하염없이 돌리고 돌리는 것뿐이었다.

며칠이면 의식을 회복할 것이란 남편은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한 마음은 절망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갔다.

택시를 잡아타고 무조건 조계사로 가자고 했다. 서울 하늘아래 아는 절 이름이라고는 조계사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겨울 조계사 대웅전 안은 뼈마디가 시릴만큼 한기로 가득했다. 백일도 안 된 아이를 차디찬 조계사 법당 바닥에 눕혀 놓고 곁눈질로 다른 사람을 따라 절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하루 빨리 의식을 회복해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일 배, 일 배 정성을 다했다. 처음 해보는 108배는 생각처럼 그리 녹록치 않았고, 30여분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마음이었어요. 게다가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알기라도 하듯 칭얼대지 않는 아들이 어찌나 고맙던지….”

존재 그 자체가 부처님 가피

그날 이후 윤 보살은 병원과 조계사를 오가며 남편의 쾌유를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무섭도록 막막한 이 현실을 벗어나게 해 달라며 무릎이 부서지도록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그러나 아직은 윤 보살의 정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녀를 찾아왔다. 장기간 계속된 병원생활로 남편은 강제퇴직 처리됐고,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가족의 생존마저 위협했다. 특히 이집 저집 맡겨져야 했던 아이들로 인한 가슴앓이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곳도 없었다. 이토록 가혹한 시련이 왜 자신에게만 연달아 찾아오는지 부처님을 향해 원망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언제나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묵묵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부처님을 보면 왜 또 그렇게 눈물이 흐르는지.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의 곁에는 분명 살아 숨 쉬는 남편과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난 즈음의 일이예요. 간호학원에 등록했어요. 가족의 생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편을 제대로 돌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문득 남편이 살아 숨 쉰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고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토해냈던 분노와 원망을 거두고 참회의 기도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바쁘고 고된 나날이었지만 윤 보살은 수업이 끝나면 곧장 법당을 찾아 부처님께 엎드려 오늘 하루와 지난 과거를 참회했다. 마음의 변화는 곧 얼굴을 통해 드러났다. 어느새 삶의 고뇌와 눈물로 얼룩졌던 그녀의 얼굴에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맑은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가피예요. 간호학원 졸업과 동시에 경찰병원에 취직이 되고, 작은 평수지만 병원 근처에 영세민 아파트에 당첨돼 사고 이후 처음으로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같은 하늘아래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충분히 감사할 일이고요.”

부처님께서도 ‘분노는 무량겁의 선근을 불사르지만 분노를 제거하면 모든 복이 따른다’고 설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진심어린 참회는 기나긴 절망의 어둠속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돼 가피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웃 고통 알기에 봉사 전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윤 보살이지만 세상살이는 여전히 고단하다. 그러나 윤 보살은 간호 실무관으로 일을 시작한 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누구보다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남편을 간호하며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이 내민 손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의 가피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포교의 방편인 까닭이기도 하다.

“먼저 참회하고 기도하세요. 당장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 언젠가 다른 모습의 나와 세상을 보게 될 겁니다.”

존재 그 자체가 부처님의 가피라는 윤애경 보살은 언젠가 남편이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이란 희망과 함께 오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부처님께 참회와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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