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봉선사에서 운허 스님을 만나다

기자명 법보신문

운허의 출가-봉선사 인연
성숙의 지난 행적과 흡사

1921년 가을부터 이듬해인 1922년 4월까지 국내에서는 서울청년회, 조선청년회연합회 등의 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주의사상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었으나, 그 안에서 얽혀 있던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은 서로 다른 이념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다툼을 벌이는 등 아직은 혼란한 면이 많았던 시기였다.

성숙은 봉선사 강원에서 사집 과정을 마치고 이제 막 사교 과정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으면서도, 밖으로의 활동 폭을 넓히기 위해 1922년 1월에 결성된 무산자동맹회에 가담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성숙은 이 시절 또 다른 한사람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그는 다름 아닌 훗날 대강백이 되어 봉선사는 물론 한국불교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성숙에게는 생을 다할 때까지 불제자의 인연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운허 스님이다.

1922년 1월 어느 날, 성숙은 대중들과 함께 봉선사 큰방에서 월초 화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도 누군가 잘못한 일을 화상이 알아차리고 경책을 하기 위해 모이라고 했기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낯모르는 젊은 스님이 들어와 인사를 하고는 화상이 앉아야 할 어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중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스님이 “그 자리는 월초 큰스님의 자리”라고 일러주자 젊은 스님은 얼굴까지 빨갛게 붉혀가며 황급히 자리를 옮겨 앉았다.

대중방에서는 서열에 따라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으나, 젊은 스님은 그 법도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스님을 일러 불교에서는 ‘오후 세시에 머리 깎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그 앉을 자리 구별도 하지 못하고 대중방에 들어선 이가 바로 운허 스님이었다.

월초 화상은 대중들을 경책하고 나서 운허를 따로 불러 앉혔다. 운허의 스승 경송에게서 이미 삭발염의한 이유를 들어 알고 있던 화상은 “우선 중다운 중부터 될 것”을 당부했다. 운허는 독립운동을 하던 중 일본경찰에 쫓기게 되었고, 인연이 되어 1921년 5월 강원도 홍천의 봉일사에서 경송 스님을 만나 출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금강산 유점사로 자리를 옮겨서 서기 일을 하던 중에 월초 화상의 부름을 받고 봉선사에 오게 되었다.

이렇듯 운허의 출가 과정이나 월초 화상을 만나게 된 사연은 성숙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화상은 이날 운허에게도 전날 성숙에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백성들을 깨우치고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면 계몽을 해야하고 교육을 해야할 것이며, 그 전에 자신부터 힘을 기르고 지혜를 갖춰야 한다”는 화상의 가르침을 들은 운허는 다음날부터 봉선사에서 대중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성숙은 운허와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게 되었으나, 운허가 남다른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직접 묻지는 않았다. 운허에 대한 궁금증이 차차로 생겨날 때쯤 월초 화상이 은밀하게 성숙을 불렀다. 화상에게 “저 아이도 너와 같은 꿈을 꾸고 있으니, 각별히 살피고 의지하도록 하라”는 당부를 들은 성숙은 그때서야 좀 다르다 싶었던 운허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대중들이 모르게 운허를 뒷산으로 불렀다. 이때 성숙의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으므로, 서른 한 살이 된 운허에 비해 여섯 살이나 아래였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법랍이라 하여 출가한 날로부터 새롭게 따지는 나이가 있었으니, 절 집안 나이로 보면 성숙이 오히려 다섯 살이나 위였던 셈이다.
 
sjs8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